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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나는 내가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측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온 세계에 존재하는,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204쪽)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던 6년 전, 작가 유미리는 도쿄의 희망에 가려져 아웃포커싱 되는 것들에 관한 글을 썼다. "큰 재해가 생겨도 일본인은 폭동을 일으키지 않고 줄을 잘 선다. 협력하고 서로 양보하고 예의를 지킨다.(200쪽)"는 미담 뒤에 가려진 일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한국전쟁의 상실감 속에서 태어나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온 작가 유미리는 뿌리도 없이 표류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이해한다. 그들과 숙명적인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작가는 환호하는 군중들 사이를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간다. 작가가 벌려놓은 틈새로 들여다본 우에노 역의 노숙자들은 강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듣고, 보고 자라왔던가.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안다'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당신에겐 있고 우리에겐 없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순 없지.(186쪽)"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의 주요 무대인 우에노 역은 본래 타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성공한 삶으로 가기 위해 내딛는 첫 발걸음이었고, 소소한 성과와 함께 꽤 의기양양해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이었다. 경제성장기 희망의 상징이었던 우에노 역 근처에는 노숙자들이 방치되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났던 그들은 찾아줄 가족이나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채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다. 레스토랑의 불빛이 꺼지고, 벚꽃 축제의 막이 내리면 노숙자들은 삶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줍기 위해 모여든다. 그들은 그렇게 모든 것이 지나간 자리 위에만 설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다. 세계유산 등재나 올림픽 유치와 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때마다 노숙자들은 '특별 청소'의 대상이 된다.
돈을 벌기 위해 타지로 나와 아이들이 크는 모습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한 인생 위에 번번이 천황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올림픽 도쿄 대회 개최가 선언되고, 천왕이 무사히 태어나는 동안 소설 속 인물은 그 경기장이 건설되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고, 산파를 불러올 만한 돈도 없는 자기 자신을 탓해야 했다. 경제성장기 일본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전부 떠맡은 그들에게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겨우 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황과 마주 봤을 때 무언가를 털어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목소리는 텅 비어 있었다.(172쪽)" 자신의 것도 없이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며 살아온 노동자들은 혼자 떠안지 못할 만큼 방대한 시간을 살다가 삶의 끝에서 고작 노숙자가 되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옛말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구덩이였다면 기어 올라올 수도 있겠지만 절벽에서 발이 미끄러지면 두 번 다시 인생이라는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 추락을 멈출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 하니 근근이 용돈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92쪽)
작가 유미리는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과 쌍을 이루는 작품을 한 권 더 집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오염 제거 작업원으로 일했던 한 노숙자의 이야기다. 작가는 박수 소리에 묻혀 망각된 삶을 방치하지 않고, 끊임없이 건져 올린다. 재일교포로서의 정체성은 그가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연대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이 보여주는 유일한 희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이 받았던 멸시에 악의를 품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원하려는 시도를 하는 작가.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다음 행보가 더욱더 애타게 기다려진다.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