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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평점 :

『가난한 사람들』은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시킨'과 고아 소녀 '바르바라 도브로숄로바'가 주고받은 편지를 서간체 형식으로 적은 소설이다. '마카르 제부시킨'과 '바르바라 도브로숄로바'는세상으로부터 일인분의 몫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받으면서 외롭고 비참하게 지낸다는 점이 닮았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은 편지를 통해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에게만은 존재성을 인정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가난하기 짝이 없는 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연인 혹은 부녀 같은 사이로 그들의 관계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위하는지 만큼은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선량한 애정은 그러나, 가난을 이유로 번번이 가로막힌다. "불행은 전염병이에요,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져야 해요, 더 심하게 전염되지 않으려면.(134쪽)" '바르바라 도브로숄로바'의 말처럼 그들이 서로를 위할수록 선한 의지는 더없이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아무런 잘못도 없는 선량하고 성실한 이들을 어떻게 하면 구해낼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조바심과 함께 책을 읽어 나갔다.
바튜시카, 먹을 것도 없는 마당에 명예가 무슨 소용입니까. 돈이 중요해요, 바튜시카, 돈이. 그러니 그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세요!(218쪽)
서간체 형식이기 때문인지 소설은 무척 술술 읽혔다.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마카르'와 '바르바라'의 삶을 생각한다면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하루하루를 꾸려나가는 것조차 버거운 삶을 고려하면, 그들에게 있어 소설책은 하나의 사치처럼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바라'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푸쉬킨 전집을 구매한 일이 있었고, 『벨킨 이야기』는 '바르바라'와 '마카르'를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마카르'와 '바르바라' 같은 인물이 가난하고 비참한 상황 속에서 바라는 것은 돈 어마어마한 양의 재산이 아니다. "돈 버는 능력(89쪽)"만이 칭송받는 세상에서 그들은 자신의 명예, 품위와 체면, 또는 읽고 쓰는 행위를 보장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동등한 위치에서 악수를 나누는 행위가 그들을 살게 하고,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수군거림과 조소와 농담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돈에 쫓기는 처지를 생각한다면 명예나 품위 등은 군더더기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가난하고 불행했지만 '마카르'와 '바르바라'는 서로 밖에 기댈 데가 없었다. 벗어날 길이 없어 운명처럼 여기며 받아들이고자 했던 가난과 불행을 때로는 외면하고, 혹은 이겨낼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던 이유는 역시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틋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서로라는 유일한 희망 안에서 어떤 기적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가장 절실한 요소였던 '돈 버는 능력'을 신은 끝내 그들에게 주지 않았다. 누군가의 은총으로 굴곡진 삶을 간신히 넘어서도 불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기쁨을 잡아채 갔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쩌면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불행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을 읽노라면 삶은 부정할 만한 일 투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