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0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담 보바리는 곧 나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인간의 삶에 대한 전기


『마담 보바리』는 기이하게도 '보바리 부인'의 남편인 '샤를 보바리'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샤를'의 생애를 톺아보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시선은 '보바리 부인' 즉, '에마'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보바리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에마'의 내면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꿈이나 환상에의 추구로 가득 차 있다. 소설 속 세계를 탐닉하며, 화려한 생활을 꿈꾸는 '에마'에 비하면, '샤를'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다. 혹자에게는 이상적 세계라고도 볼 수 있을 법한 삶의 안정과 사소한 행복이 '에마'에게는 지루함만을 자아낸다. 1부에서는 줄곧 삶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이상향을 찾아 떠나고자 하는 '에마'의 심정에 집중한다.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모든 것을 배척하고,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에마'의 행보는 좀 위태로워 보인다. 그녀는 현실적이고 이상적으로 적확하게 자신의 목표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을 향한 그녀의 허기가 영영 채워지지 못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에마'가 곧 난파당할 배처럼 보였던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녀는 삶의 공허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서 백마 탄 왕자가 다가와 자신을 구출해 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자신의 감정에는 그토록 충실하고 적극적인 그녀가 수동적인 태도로 자신의 비참한 삶을 극복하려 한다는 점이 여성을 향한 시대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에마'가 다음 장, 또 그다음 장에서는 그녀 자신만이 그녀 자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백마 탄 왕자'라니. 그건 어린 시절에나 듣던 동화 속 이야기였고, 이제는 누구도 자신의 딸에게 주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 스토리 라인이었다.


'에마'가 끝내 온전히 삶의 주체자로서 군림하지 못한 데에는 여성을 향한 시대적 요구에도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임신을 했을 때에도 딸보다는 아들을 낳기를 원했다. 아들이 자신을 대신해 열정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적극적으로 행복을 쟁취할 수 있기를 바랐다. '에마'의 기준에서 여성은 "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관습에 제약당하고(131쪽)" 마는 존재다. '에마'는 자신이 세운 여성상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자신 안의 욕망에 대한 갈구를 발견했고, 은밀하면서도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했다. 그러므로 역시 아쉬운 점은 '에마'가 붙들고 있던 소설 속 여성들이 사랑과 같은 감정들에만 자신의 정열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과 미래의 견실함에 투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다면 '에마'가 어떤 후회, 불안, 혹은 번민도 없이 사랑으로 뛰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건설적인 일들을 구축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으로 '에마'는 감정에 대한 솔직함으로 이미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처녀 시절, 결혼, 연애로 이어지는 온갖 상황을 거치며 그녀는 마음의 온갖 모험에 그 모든 것을 탕진해 버리고 말았다. 마치 길가의 여인숙을 나올 때마다 수중의 돈이 조금씩 줄어드는 여행자처럼, 그녀는 살아오면서 그런 식으로 줄곧 그것들을 잃어버렸다.(246쪽)


'에마'는 그토록 열정적으로 매달리던 사랑의 힘으로도 삶을 극복해내지 못했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더 큰 공허와 권태가 살아남았으며, 그녀의 꿈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현실은 극도로 불안해져 갔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에마'와의 위험한 관계를 정리하려는 사내들의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한 '에마'는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기꺼이 저당잡힌 채 사랑이라는 꿈과 환상의 세계로 번번이 돌아간다. 단순히 누군가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싶었고, 이를 통해 행복해지고자 했던 '에마'의 바람이 어째서 이렇게 실현되기 어려웠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미풍양속과 대중의 종교심을 훼손했다."라는 이유로 기소되었던 『마담 보바리』는 이후 "비난받아 마땅한 면이 있지만 일말의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음"이 인정되어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환상과 꿈을 좇던 '에마'의 욕망이 좌절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이 책이 가진 도덕성을 인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에마'라는 한 인간의 삶을 치밀하게 파고든 후 그 판결 내용을 보자니 괘씸한 마음이 든다. 어리석은 방식을 택했지만,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삶을 대했고, 절박하게 구원을 바랐던 한 인간의 측면에서 보자면 말이다.


00000000.p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