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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 자기 삶의 단독자로 선 90년대생 10명과의 대화
유선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월
평점 :

"사랑하기를, 존엄하기를 선택한 사람들"
그 누구도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내일들
10명의 90년대생 여성들과의 특별한 대담
운동장 구석에서 적당히 피구나 하게 했던 체육시간이, 소녀를 청순가련하고 새하얗게만 표현해온 대중문화가, 덩치 좋은 여자, 힘센 여자, 기운찬 여자에 대한 유난스러운 반응들이 몸을 작게 쓰게 했다는 걸, 꿈도 왜소하게 꾸게 했다는 걸 왜 서른이 다 돼서야 알게 된 것일까.(215쪽)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은 <마리끌레르 코리아>의 피처 에디터 유선애가 10명의 90년대생 여성들과 여성으로서의 삶, 직업적 가치관 등에 관해 나눈 밀도 높은 대화를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예지', '김초엽', '황소윤', '재재',' 정다운', '이주영', '김원경', '박서희', '이길보라', '이슬아'…이름만 들어도 탄성을 자아내는 인터뷰이들을 소위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틀 안에 가둘 수는 없어 보인다. 그들은 '90년대생', 혹은 '여성'이라는 딱지를 떼어둔 채 저마다의 색으로 빛난다. 각자의 자리에서 확고한 신념과 함께 삶을 밀고 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맞게될 변화된 내일의 모습을 가늠한다. 자신의 이름을 달고 분명하게 살아있는 이들이 만들어낸 내일은 도대체 어떤 형태와 질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앞으로의 일들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내일들을 사랑하고 지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신한다.
여성 인터뷰어와 여성 인터뷰이들의 인터뷰집인만큼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안에는 여성으로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구분에 회의를 느끼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우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 온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소수자성을 띠고 있는 여성들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90년대생 여성들은 젠더 감수성을 재빠르게 습득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일을 넘어서서 그 변화의 주체자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세대 전체가 리부트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N포세대'로서 무기력함과 체념을 체득해 온 그들은 전복을 위한 투쟁에서만큼은 물러서지 않는다.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미래를 지키도록 서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전쟁이 아닌 연대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얻는다.
그런 투쟁과 전복, 변화의 선두에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의 인터뷰이들이 있다. 그들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재 자체가 패러다임이 되는 사람(113쪽)"이 되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사례와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그들 덕분에 90년대생 여자들에게 씌워졌던 프레임은 번번이 무너지고,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결국엔 그들로 인해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차원이 다른 가능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내일의 유토피아는 결코 혼자 이룩되는 것이 아님을 이 책은 또렷하게 인지한다. 5년, 10년 후의 미래를 그리기보다 자기 중심을 잡고 매일매일을 또박또박 살아가려 하고, 그 과정 속에서 타인과의 경쟁 의식보다는 연대와 공존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품는다. 우리의 내일들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즐겁고 행복할 방법을 찾아내려고 애쓸 그들을 잘 알기에 나는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들을 벌써부터 두 팔 벌려 반기고 있다.
유토피아가 완성형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유토피아로 바꿔가려는 개인들이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 P83
소명이나 사명이 아닌 천진한 즐거움이 그를 계속 싸우게 한다. 경험에 의미를 두고 한 걸음씩 전진한 것이 그의 삶의 반경을 넓혔듯, 이길보라의 쾌활한 싸움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인식의 폭을 한 발자국씩 확장시키고 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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