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국가에서
V. S. 나이폴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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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제3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V. S. 나이폴의 부커 상 수상작


자유 국가에서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방랑자들의 절박한 자유에의 추구


『자유 국가에서』도 그렇지만 대부분 작품에서 유럽 열강의 침략과 억압으로 문화와 전통, 삶의 뿌리와 공동체를 상실한 채 유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로서의 나이폴의 위치는 확고하다고 볼 수 있다.(436쪽, 역자 해설)


탈식민주의 문학을 선도한 작가, 제3세계 문학의 기수 V. S. 나이폴

식민지 시대 이후의 유랑자들의 삶을 통해 정체성, 자유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해 묻다


『자유 국가에서』는 영국인 방랑자를 향한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삶을 몇 개의 숫자와 지명으로 압축해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유랑하는 삶에 익숙한 모습이다. 구색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소형 증기선 안에서 방랑자는 모든 곳에 있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조그만 배 안에서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영국인 방랑자의 모습은 어느 한곳에 속하지 못한 채로 떠도는 땅 위에서 쓸쓸하게 살아가는 방랑자 전체의 삶을 압축해 놓은 느낌이다. 영국인 방랑자의 이야기를 담은 「피레우스의 방랑자」를 시작으로 『자유 국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부랑자, 식민지에 파견된 행정관 등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 방랑자들의 불안정한 삶을 묘사하며, 확고한 정체성과 자유를 갈망하는 이방인의 역경을 다룬다. 이 책에 놓인 그들의 삶은 마땅히 땅에 묻혀 있어야 할 연약한 뿌리가 바깥에 훤히 드러나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애초의 방랑은 다른 삶을 향한 기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여기보다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한 선택이라고 믿기 때문에 방랑자들은 자신의 터전을 버리는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얼마간 진정으로 자유롭게 살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자유로 인한 기쁨도 잠시, 그 사이를 비집고 이제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는 공허함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합법적으로 타국에서 살아갈 권리를 획득한 후 안정적인 삶을 꾸리게 된다 해도 그들은 늘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모른다. "하루하루를 썩 괜찮게 꾸려 나갔다. 하지만 이런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135쪽,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말하라」)"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다른 세계로 이주해 왔지만, 그들은 이쪽과 저쪽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도리어 일상적인 경제 문제와 더불어 정체성과 자유 등 삶의 심오한 문제들까지 자신의 일상 안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 다른 여기에서 올바른 답을 찾지 못해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버리고 다시 한번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자리는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고, 본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방랑자의 흔적은 말끔하게 지워지고야 만다. 이렇게 삶은 순환한다는 명백한 사실이 그들이 유일하게 쥔 열쇠고, 어쩌면 이로 인해 그들은 이주를 끝내고 한자리에 머무를 계획을 세운다.


방랑자로서의 쓸쓸함과 극한의 외로움, 그리고 진보하지 못한 삶에 대해 체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방랑의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대체 누가 내 돈을 강탈하고 내 인생을 망쳤는가? 나는 이들 중 누구에게 복수해야 하는가?(173쪽,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말하라」)"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는 방랑자들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갈망하면 갈망할수록 더 많이 잃고 있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모두가 세상에 묻고 싶은 바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자유 국가에서』는 현대의 독자 전체에 통용될 수 있는 필독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나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말하라」가 외국인으로서 미국과 영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질서에 편입하는 인물들의 삶을 묘사했다면, 표제작 「자유 국가에서」는 이와 반대로 강대국 출신의 '바비'와 '린다'가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방랑자 신분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그렸다. 탈식민주의 문학과 제3세계 문학가로서 작가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중편이다. 식민 지배 시스템이 붕괴된 문제투성이의 한 국가에서 행정관으로 살아가는 '바비'는 위기에 처하는 순간 지배자로서의 지위를 과시하려 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대령'과 같은 식민지 초기 지배자들을 대할 때마다 엉뚱한 길에 들어선 것처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바비' 안에는 우위 선점에 대한 욕구와 방랑자의 연약함이 공존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존속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유 국가에서」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우리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그러다 거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자유로워지기로 마음먹었다. 자유는 내게 이런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가진 건 오로지 몸뚱이 하나뿐이라는 사실, 어떻게 해서든 그 몸뚱이를 입히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사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을.(96쪽, 「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


자신이 머무는 땅만이 완벽하다고 느끼던 시대에서 '식민지 시대'로 전환되었고, 그 이후 V. S. 나이폴이 집중하고 있는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가 도래했다. 여전히 불쑥 튀어 오르는 식민지 시대의 잔재처럼 방랑 또한 살아남아 있다. 우리는 이제 좀 더 자발적으로 방랑을 지지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타국에 놓이는 순간 정체성을 의심받고, 자유를 위협받아야만 할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이후의 '방랑자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고정된 정체성과 자유의 개념을 다시 수정하는 과정에 착수해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방랑자들을 위해 무리 사이의 경계 긋기가 아닌 독립된 개개인의 정체성 확립과 이를 향한 존중, 그리고 개인과 개인의 연대가 절실해 보인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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