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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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유죄나 무죄가 결정된다는 것을 그는 아직 모른다.(556쪽)


넷플릭스 드라마 <그레이스>의 원작 소설이기도 한 『그레이스』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소설에 옮기지 않는다,는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신념이 소설 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1843년 7월 영국령 캐나다에서 자신의 고용주와 그의 연인이었던 가정부를 살해하고 미국으로 도주한 두 명의 하인 중에서 작가는 '그레이스 마크스'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몽고메리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그 희대의 살인사건과 관련된 입증되지 않은 가설은 너무도 많아서 작가는 개중에 가장 확실한 안을 선택해야만 했고,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메꿔야만 했다고 한다. 19세기에 벌어진 사건인 만큼 우리는 더 이상 그 사건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얻기 어렵고, 따라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그레이스』를 통해 '그레이스 마크스'를 알고 또 기억할 뿐이다. 작가도 '그레이스 마크스'를 소개하기만 했을 뿐 직접적인 판단은 유보하고 있으므로, 그의 이름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을지는 21세기의 독자인 우리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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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마크스는 희대의 살인마인가, 혹은 연약한 피해자에 불과한가?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서 『시녀 이야기』, 『눈먼 암살자』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다루어 왔다. 페미니즘 작가의 정체성을 가진 '마거릿 애트우드'를 애정해 온 독자로서 『그레이스』를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읽어내는 일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레이스 마크스'를 가난하고 연약한 어린 하녀로만 보기에는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는다. 실제 사건에서나 소설 속에서도 '그레이스 마크스'를 향한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나뉜다. 누군가는 '그레이스 마크스'가 또 다른 하인 '제임스 맥더모트'를 이용해 살인을 교사한 주동자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레이스'를 16살의 연약하고 어린 하녀로 보고, 사형 집행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맥더모트'와 '마크스'의 진술이 여러 번 번복되고 엇갈렸기 때문에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의견 또한 하나로 일치되지 못했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19세기 내내 '그레이스 마크스'를 향해 여론이 내보이던 이중성은 당시 여성의 천성을 대하던 사람들의 흔한 반응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21세기에도 여성은 이런 이중적인 시선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다. 여성은 종종 남성의 순진함을 악용할 수도 있는 악녀로 전락하거나 남성들의 권력하에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된다. '몽고메리 살인사건'을 두고 봤을 때 '그레이스 마크스'가 가해자나 피해자 그중 어느 한 쪽에 뚜렷하게 속해있지 않았던 장면들은 이쪽과 저쪽으로 분리된 사회의 판단 기준에서 벗어난 일상적인 개체로서의 여성을 보여주려던 작가의 시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고, 하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하녀로 살지도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했어요. 이건 일종의 직업에 불과하다면서요.(235쪽)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의도는 분명했고, 분개할 대상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레이스』에서만큼은 다르다. 우리의 독후감에는 물음표가 가득하고, 온갖 추측을 시도해 보지만 섣부르게 판단하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에 몇 번이고 지웠다가 쓴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가득한 책이지만,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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