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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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부당함을 포착하고, 맞서 싸우는 작가 '이라영'의

다시 기억하고, 다시 이야기하는 글쓰기



그놈의 ‘I’ 좀 집어치울 수 없어? 당신이 대체 뭔데?(103쪽)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 줄 필요는 없다』의 저자 '이라영'은 다양한 작품에서 일상적인 차별과 불공정, 그리고 폭력 등을 다루며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글쓰기를 선보여 왔다. 예리한 시선으로 지금 여기의 '정상성'에 질문을 던지고, 그 민낯을 까발리는 데 힘써온 저자의 독서 에세이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작품의 생산자로서의 여성과 이를 소비하는 독자로서의 여성을 잇는 '북우먼'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저자는 현 지배 질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도모한다. '애니 프루'부터 '옥타비아 버틀러'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여성들은 성별이나 인종에 구애받지 않으며, 누군가의 아내나 애인이라는 수식어를 벗어던지고, 오롯이 한 명의 개인으로서 또렷하게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식상하고, 이제 그만했으면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정상적인' 지배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기억하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하는 저자 '이라영'이 더없이 반갑다. 과거를 뒤집어 놓아야만 그 위에 새로 쓰인 이야기가 더욱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권력 질서 안에서 여성은 종종 피해자가 되었고, 그중 몇몇은 삶의 부조리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저자 '이라영'의 에세이는 여성의 소수자성과 피해자로서의 자아에 매몰되지 않는다. 도리어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살아남은 "생존자의 언어"에 주목한다. 타인의 입을 통해 단편적으로 전해진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생존자의 언어'는 "압제자의 언어(69쪽)"를 부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살아남은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 자신들의 고통을 '증언'하기를 바란다. 작가 '콜레트'의 말처럼 "역사를 쓰는 자는 펜을 쥔 자다." 일례로, 작가 '박완서'는 한국전쟁의 참담함을 목격하고 이를 꼭 글로 옮기고자 했고, 이에 성공했다. 그리고 21세기의 나는 작가 '박완서'의 눈으로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마치 내 과거인 것처럼 되새긴다. 그러니까 온갖 수난으로부터 살아남은 여성들의 증언이 기록되어 여성들의 삶이 '탈락한 역사'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탈락한 역사를 끄집어내는 일.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341쪽)"


"내게 속하는 것은 그대에게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

덴버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상속받아 엄마의 젖(잉크)으로 죽은 자매의 피를 생각하며 제 이야기를 쓸 것이다. 덴버는 바로 ‘피젖’을 먹고 자란 수많은 살아남은 여성들을 상징한다.(321쪽)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 줄 필요는 없다』를 통해 우리가 떠올리는 건 '살아남은 여성들'뿐만이 아니다. 저자 '이라영'이 설정한 세대를 뛰어넘는 '자매애'의 범위는 훨씬 넓다. 그보다는 사회에서 소수자성을 띠고 존재하는 사람들 전체를 아우른다. 갖가지 이유로 사회로부터 배제, 차별, 불공정을 겪어온 소수자들에 주목해 온 저자의 날카로운 글쓰기가 쌓이고 쌓여 이 책 한 권에서 폭발적인 위력을 발하고 있다. 글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을 유일한 피해자로 상정하고, 또 다른 약자에게 가해자로 군림하는 태도를 반성할 기회를 획득한다. "내게 속하는 것은 그대에게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 왜냐하면 내게 속하는 모든 원자는 그대에게 속하는 / 것이기도 하니까.(월트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 1>)" '월트 휘트먼'의 시 한 구절은 이 책을 관통하는 최적의 문장이다. 필사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의 기억을 기록함으로써 증언하는 일은 '압제자의 언어'를 지워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록을 통한 증언'은 또 다른 생존자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리는 행위이고, 들불처럼 번져가는 생존자 집단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것이 '우리 모두의 일'임을 깨닫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 줄 필요는 없다』은 저자의 개인적인 서사와 폭넓은 독서력이 집약되어 있는 에세이다. 글을 읽는 동안 나의 편협한 독서력과 낮은 경험치가 뼈저리게 느껴졌고, 못내 아쉬웠다. 저자의 꿈처럼 나 자신도 '북우먼'으로 거듭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책을 매개체로 다양한 사람들을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고, 진정한 연대의 힘을 보여줄 날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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