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첫 번째 돌멩이가 그를 가격했다. 그는 그것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뒤따라 날아오는 돌멩이들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손으로 얼굴을 가릴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그저 돌멩이가 빗발치는 길 한복판에 쓰러졌다.(95쪽, 「돌멩이」, 레일라 슬리마니)
코로나 시대와 마주하는 일은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표현처럼 불분명한 곳에서 갑작스레 날아온 돌멩이에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이제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에선가 갑자기 돌멩이가 날아왔다. 문제는 그게 첫 번째 돌멩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2020년에 처음으로 뒤통수를 가격 당했을 때 우리는 2021년이면 모든 일이 과거지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1년 7월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악몽을 공유하고 있다. 더욱 침울한 것은 우리가 똑같은 악몽을 함께 꾸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국가 내에 살더라도 다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발견하게 되었고, 가난이나 인종 등을 이유로 그어진 경계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받는 차별이나 배제, 소외, 무관심은 격렬해졌다. 코앞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한 후에 인류는 고작 봉쇄와 분열을 대책으로 선택했다. 삶의 터전에 대해 사람들이 받는 위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격리 생활이 지속됨에 따라 사람들은 생계수단을 잃어야만 했다. 우리가 꿈꾸던 미래는 온데간데없고, 인류는 도리어 존재론적 위기에 처해있다.
한편으로 '코로나 시대'가 꼭 우리에게 부정적인 작용만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교훈을 온몸으로 배우게 되었고, 지금 여기 우리 주변에 놓인 것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코로나로 멀리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동네를 산책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동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간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직장 동료들과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적어졌고,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두면서 친구들을 몇 달씩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의 기회를 포착하면 한층 수다스러워졌고, 아주 잠깐이라도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애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기를 갈망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가 아닌 누군가, 내가 모르는 낯선 누군가의 얼굴을.(304쪽, 「죽음의 시간, 시간의 죽음」, 줄리언 푸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