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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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자 사람들은 새삼스레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앞으로 닥칠 일을 예견하고, 현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지를 모색하고자 했다. 카뮈의 『페스트』처럼 코로나 시대에 갑작스럽게 주목받기 시작한 책이 또 한 권 있었다. 바로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데카메론』은 흑사병을 주제로 한 무리의 남녀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액자 소설 형태로 모은 선집이다. 그리고 《뉴욕타임스》는 이 놀라운 작품을 기반으로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프로젝트에는 『데카메론』의 리뷰를 작성한 '리브카 갈첸'을 비롯해 서로 다른 문화적·지역적 배경을 가진 2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29개의 다양한 목소리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적확하게 묘사하거나 팬데믹 시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놓기도 한다. 한국 독자들의 삶과 닮은 듯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여기를 다시 들여다보고, 지금까지 놓쳐온 것들을 정비할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이제 완전히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과거가 될 지금 여기의 이야기

'코로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첫 번째 돌멩이가 그를 가격했다. 그는 그것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뒤따라 날아오는 돌멩이들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손으로 얼굴을 가릴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그저 돌멩이가 빗발치는 길 한복판에 쓰러졌다.(95쪽, 「돌멩이」, 레일라 슬리마니)


코로나 시대와 마주하는 일은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표현처럼 불분명한 곳에서 갑작스레 날아온 돌멩이에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이제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에선가 갑자기 돌멩이가 날아왔다. 문제는 그게 첫 번째 돌멩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2020년에 처음으로 뒤통수를 가격 당했을 때 우리는 2021년이면 모든 일이 과거지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1년 7월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악몽을 공유하고 있다. 더욱 침울한 것은 우리가 똑같은 악몽을 함께 꾸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국가 내에 살더라도 다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발견하게 되었고, 가난이나 인종 등을 이유로 그어진 경계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받는 차별이나 배제, 소외, 무관심은 격렬해졌다. 코앞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한 후에 인류는 고작 봉쇄와 분열을 대책으로 선택했다. 삶의 터전에 대해 사람들이 받는 위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격리 생활이 지속됨에 따라 사람들은 생계수단을 잃어야만 했다. 우리가 꿈꾸던 미래는 온데간데없고, 인류는 도리어 존재론적 위기에 처해있다.


한편으로 '코로나 시대'가 꼭 우리에게 부정적인 작용만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교훈을 온몸으로 배우게 되었고, 지금 여기 우리 주변에 놓인 것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코로나로 멀리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동네를 산책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동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간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직장 동료들과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적어졌고,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두면서 친구들을 몇 달씩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의 기회를 포착하면 한층 수다스러워졌고, 아주 잠깐이라도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애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기를 갈망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가 아닌 누군가, 내가 모르는 낯선 누군가의 얼굴을.(304쪽, 「죽음의 시간, 시간의 죽음」, 줄리언 푸크스)"


"미래에는 모든 게 다를 거야."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래와의 조우를 고대하며


"미래에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겠는가?(350쪽, 「열린 도시 바르셀로나」, 존 레이)"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의 미래에 관해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2020년 코로나19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하루 평균 확진자가 1,000명에 도달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두 해씩이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고통받게 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인생을 '열린 책'에 비유하듯이 우리가 사는 이곳은 '열린 도시'가 되었다. 이번 모퉁이를 돌아나가면 그다음엔 또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상황이 꽤 많이 진척되고 나서야 전조증상이 있었음을 알아차리고, 뭐든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때가 되어서야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하루빨리 “누군가 여기서 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190쪽, 「스크린 타임」, 알레한드로 삼브라)다는 생각뿐이다.


점점 더 희박해져가는 인류애 속에서 우리가 지금의 악몽ㅡ코로나 혹은 그로 인한 분열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모든 상황에는 결국 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고 또 알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를 가리고 있는 현재의 형상이 거대한 몸집을 치우고 나면, 우리는 모든 것을 '과거의 이야기'로 두고, 전혀 다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코로나'라는 질병뿐만 아니라, 악몽과 악몽 이전에 우리가 유지해 오던 온갖 악습과 차별, 멸시, 무관심 등까지 우리는 '과거의 이야기'로 두고 미래를 향해 떠날 것이다. 나 하나가 아닌 우리 모두가 악몽으로부터 기적적으로 탈출해 '살아야 할 운명'임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열렬히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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