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빛나는 강
리즈 무어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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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범죄스릴러의 등장

자기파괴적이면서도 희망적 스토리를 가진

'리즈 무어'의 신작 『길고 빛나는 강』을 읽다


『길고 빛나는 강』은 무척 잘 쓰여진 범죄스릴러 소설이다. 마을 전체가 '마약중독'으로 고통받는 '켄징턴'을 주요 배경으로, 몰입도 높은 스토리라인을 자랑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다 알았다고 자만할 때가 되어서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24구역의 순찰경관인 '미키'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켄징턴'의 진실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우리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마약청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린 '켄징턴'에서 비롯되는 절망감과 그 안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은 '자매애'로 『길고 빛나는 강』은 단순한 범죄스릴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그 틈에서도 '인간성'과 '인류애'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을 건넨다. 이건 '마약중독'만이 삶의 유일한 방책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한편으로 세상의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간절히 그들을 구해내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나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해. 모두가.(508쪽)

삶의 부조리 그 자체인 '켄징턴'에 대항하는 데 두 가지 방식이 있다면, 그건 각각 '미키'와 '케이시'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순찰경관 '미키', 그리고 그녀와 달리 각종 범죄 이력을 가진 '케이시'는 자매로서의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과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서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몰락과 부패에 맞서기 위해 그들은 오랫동안 주먹을 쥐고 있었지만, '케이시'는 끝내 세상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그 방향을 돌렸다. '케이시'뿐만이 아니라, '켄징턴'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은 세상을 변혁시키는 어려움에 대해 너무도 잘 알았고, 그보다는 '약물중독'으로 자신을 어둠 속에 가두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는 눈을 뜨지 않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켄징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끝에는 언제나 '약물중독'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약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었으므로, '켄징턴' 안에서는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없다. '미키'는 자신이 자라온 동네를 보면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떠올린다. 그녀는 마약이 휩쓸고 간 자리에 결국 살아남는 건 고요뿐이리란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사라진 동생 '케이시'를 찾아야만 한다. 너무 쉽게 자신의 삶을 파괴해 버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 아무런 죄도 없이 윗세대의 삶을 물려받고 반복하게 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의미에서 『길고 빛나는 강』은 '미키'와 '케이시' 자매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길고 빛나는 강' 위에 새겨진 떠나간 영혼들의 이름들, 이제는 사라져버렸지만 이전에는 지극히 선하고 전도유망했던 이름들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 추적이 시작된다.




케이시가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케이시겠지.(123쪽)


『길고 빛나는 강』에서 주축이 되는 인물은 사실 순찰경관인 '미키'가 아니다. 그녀가 애타게 찾아 헤매는 동생 '케이시'라고 봐야 한다. '케이시'라는 인물은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그녀와 같은 처지에 있던 여성들뿐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범죄에 취약한 환경에 놓인 인물들은 누구나 '케이시'의 얼굴을 하고 있다. 범죄의 주체자이지만 나쁘다고 확언할 수 없는 사람들, 그렇다고 해서 세상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설에 담겨 있다. '케이시'는 부모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범법행위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불행이 범죄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는 없다. '미키'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케이시'와 그녀 주변의 인물들만 보아도 인간의 선과 악이 지닌 양면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 1차적으로 우리는 그들 앞에 이제까지 우리가 학습해 온 거의 절대적인 잣대를 들이밀고 판결을 내린다. 그때 '머혼 부인'의 목소리가 끼어드는 것이다: "케이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525쪽)" 그래서 나는 길게 나열된 명부 앞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하나? 악하지만 선한 것이 분명했던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판단해야만 할까? 이럴 때마다 당혹스럽고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다만 확실한 건 '길고 빛나는 강' 위에 새겨진 그 이름들을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건져올려야 했다고, 이번에는 늦는 일 없이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후회 속에, 동시에 어떤 희망과 기대 속에서.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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