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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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심히 돌아가지. 인생이 별거야? 심각할 거 없지 않느냐는 거야. 그런데 가끔가다 아주 잠깐 어떤 은총이 찾아와, 인생은 별거라는, 소중하다는 어떤 믿음이.(p. 269, 「들개: 길 잃은 영혼」)

네 아들을 키운 싱글맘이자 알코올중독자, 그리고 그녀를 평생 동안 괴롭혔던 '척추옆굽음증'. 파란만장한 그녀 본인의 일생은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작품에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신념이 투영되기 마련이지만, 『청소부 매뉴얼』에 수록된 '루시아 벌린'의 단편들은 실제 그녀의 삶과 너무도 가까워 보인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작가 소개'에 적힌 문장들뿐이지만, 『청소부 매뉴얼』을 읽고 나면 감히 그녀의 인생을 알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작가 '루시아 벌린'의 묘사는 그만큼 생생하고 세심하다.




작가는 오랫동안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 했고, 네 아들을 홀로 부양하기 위해 온갖 일을 해야만 했다. '척추옆굽음증'으로 인해 그녀가 달고 살던 척추교정기는 태어날 때부터 짊어져야만 했던 삶의 무게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끝없이 절망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이는 삶 안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종종 깨달음이 찾아온다. "가치 있지. 오늘 하루밖에 못 산다 해도 나중의 모든 고통을 감당할 가치가 있는 거야. 카마, 저들의 눈물은 달 거야.(523, 「내 아기」)" 설령 여기에 수록된 단편들의 절반만이 '루시아 벌린'의 삶과 근접하다고 해도, 나는 그녀가 끝내 기꺼이 삶을 긍정했다는 사실이 어떤 기적처럼 느껴진다. 



동생 '샐리'나 작가의 네 아들들은 작가가 "인생은 별거라는, 소중하다는 어떤 믿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글쓰기' 또한 '루시아 벌린'의 중요한 일부였다.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변환해서 종이 위에 기록하는 일은 작가가 삶을 버티도록 돕는 연료의 근원이었다.


'루시아 벌린'은 '사는 게 끔찍하다'고도 썼고, 또 "사실은 전혀 죽고 싶지 않(64, 「청소부 매뉴얼」)"다고 적었다. 끝없는 절망과 찰나의 희망의 사이를 오가는 '루시아 벌린'의 글은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모든 순간이 놀랍도록 눈부신 기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네가 할 수 있는 일, 네가 즐길 수 있는 일이 아주 많(284, 「슬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작가 '루시아 벌린'의 일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단편들을 보면서 무심히 돌아가는 세상과 그 안에서 평생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나를 느끼면서도, 도리어 삶에 절박해지는 심정이 되곤 했다. 작가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가감 없이 내보이면서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또 받아들여 주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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