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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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82년생 김지영』,

작가 '조남주'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가, 그리고 네 소설을 읽은 사람이 세상 여자들의 삶이 모두 다르다는걸, 제각각의 고통을 버티고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73)

본격적인 페미니즘 문학의 등장

납작하게 뭉개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


작가 '조남주'를 거론하면서 『82년생 김지영』을 빠뜨릴 수는 없다. 이제는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이 되어버린 '김지영' 씨의 이야기는 한국을 넘어서서 세계 각국의 여성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물론 기쁜 일이지만, 작품이 승승장구하는 덕에 작가 '조남주'의 고민은 한껏 깊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분신처럼 뒤따라 다니는 '김지영' 씨가 서로 다른 여성들의 삶을 하나의 집단으로 너무 간략하게 압축시켜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비난을 면할 수 없었던 탓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부끄럽다면서도, "내 경험과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79쪽)" 쓴다. 그리고 대답과 걸맞은 작품이 이번에 출간될 『우리가 쓴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여성들의 삶을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성들에 대해 쓰려는 오기를 내보인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 하나하나를 소설집에 담으면서도, 결국 '나'가 아닌 '우리'라는 제목으로 여성들을 결집시키는 작가의 오기에 왠지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애틋한 마음으로 책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서로 섞여 스며드는 '나'들의 이야기

'우리'가 아닌 '나'로서의 여성


어려서는 가난한 부모 대신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결혼하고는 무능한 남편 몫까지 성실하게 일하며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모두 충분히 먹이고 가르친 사람. 사실은 너무 진부한 이야기. 나는 언니를 생각하면 억척스럽다는 뻔한 말부터 떠오른다.(13)

「첫사랑 2020」의 '서연'에서부터 「매화나무 아래」의 '동주'에 이르기까지 작가 '조남주'는 글의 중심에 여성을 놓으면서도, 세대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선보인다. 글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다른 세대, 또 다른 배경에 놓인 인격체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따로 떼어 놓고 보는 일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들의 삶은 하나의 연속선상에 세워진 것처럼 이어진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미스 김은 알고 있다」의 '미스 김'과 항상 중얼거리는 사람에 불과했던 「가출」 속 '엄마'를, 또 진부할 만큼 억척스럽게 살아온 「매화나무 아래」의 '금주' 언니와 직장을 다니면서 돌봄 노동을 훌륭하게 해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오로라의 밤」 속 '지혜'나 '효경'을 어떻게 갈라놓을 수 있을까. 분명히 다른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지는 그들의 삶은 작가 '조남주'의 표현처럼 뻔하고 진부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더없이 절실해 보이는 순간이다. '김미현' 평론가가 해설에서 강조했듯이 여성들은 "자기 자신이 중심인 미래를 그리면서 현재를 직조해 나(363쪽)"가야 한다. '우리'이기 이전에 '나'일 것, 그것이 '조남주' 작가의 신작이 장편이 아닌 단편 소설집이어야만 했던 이유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우리'를 납작하게 누르는 것들에 관하여


아버지의 일. 아버지가 자신의 일이라고 한 일이 또 뭐더라.(97)

「가출」, 「현남 오빠에게」, 그리고 「오로라의 밤」은 가부장적인 남성들에 의해 가려진 여성들의 시간에 주목한다. 그들 각자의 삶은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 납작하게 눌려져 있다. 가정의 대소사를 아버지 홀로 책임지려고 하는 '아버지의 일'은 '엄마'를 '늘 중얼거리는 사람'의 위치로 전락시켰지만, 한편으로 '아버지' 본인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가부장제도는 남성에게 있어 역차별로 느껴지기도 한다. 설령 중압감을 견디다 못한 아버지가 '가출'을 시도한다고 해도 남은 가족들은 별 탈 없이 가정을 꾸려나갔다. 가족들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의 아내' 혹은 '~의 어머니'로 살던 삶으로부터 벗어나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구나.(246쪽)" 하는 해방감을 맛볼 기회를 얻기도 했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 신장에만 그 목적이 있지 않고, 가부장제하의 사람들 전부를 해방시키는 운동이라고 볼 때, 우리 모두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삶을 버티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도, 누군가에게는 싸워 얻어 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258)


처음에는 『우리가 쓴 것』이 전 세대의 여성들을 아우르는 '허스토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서 작가 '조남주'는 그간 문학작품 안에서 납작해진 사람들의 삶 전부를 새롭게 보기 위한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다양한 삶을 주제로 하는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이 특유의 성실함으로 평범한 삶을 붙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이해한다는 말을 작가는 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결국 세대나 성별과 관계없이 '브라보 유어 라이프!'. 우리가 일상 속에서 툭툭 던지듯이 뱉었던 소원들은 지금 얼마큼 나아갔을까. 그리고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인생에 갑작스럽게 나타나줄까, 기대해 볼 일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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