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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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상한 미래는 없다

'마이클 셸런버거',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경종을 울리다

2019년 9월 전 세계 3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8퍼센트가 기후 변화로 인해 인류가 멸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카페에서 음료를 사 먹는 일이 잦아지자 사무실에 텀블러 구매 열풍이 불었다. 퇴근할 때쯤 회사 복도에 놓인 쓰레기통에 가득 차오른 플라스틱 컵은 우리를 심란하게 했다. 동료들은 명목적으로는 환경을 위한다는 이유로 너 나 할 것 없이 책상 위에 텀블러를 올려놓았다. 하루라도 텀블러를 놓고 오면 스스로를 무척 자책하곤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기 시작했다. '마이클 셸런버거'의 글은 지금까지 우리가 고수하던 방식에 의문을 품게 만들고,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기후 변화에 있어 팔 할은 인간의 탓으로 여겨져 왔고, 꽤 구체적으로 제시된 인류 종말 시나리오에 맞춰 우리는 다급하게 스스로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누군가는 환경보호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했고, 또 누군가는 재활용 브랜드의 물품들을 애용하는 것으로 환경보호에 일조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모든 방식을 부정하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독자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기사나 홍보영상 등을 통해서 표면적으로만 상황을 파악한 채로 어떤 일에 몰두하면서 세상이 나아지도록 돕고 있다고 착각하던 것이 이번이 처음이던가? 사실 기후 변화는 안중에도 없이 정기적인 기부나 텀블러 사용 등으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주된 목적이었던 것은 아닌가?'마이클 셸런버거'는 종말론적 환경주의뿐만 아니라, 우리가 올바르다고 믿었던 방식 전체에 경종을 울린다.


"환경 보호의 탈을 쓴 새로운 식민주의"

경제 성장과 기후 변화 대응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들이 플라스틱 빨대를 안 쓴다는 걸로 쉽게 면죄부를 얻으려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자 '마이클 셸런버거'에 따르면 '환경 불안증'은 굉장히 모순적인 심리다. 사람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지구의 종말에 가까워졌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기꺼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셸런버거가 보기에 이는 "환경 보호의 탈을 쓴 새로운 식민주의"에 가깝다. 환경 보호를 이유로 더 낮은 계층의, 더 취약한 지역의 성장과 발전을 저지하면서 똑같은 방식을 자신의 국가와 개인적인 삶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기후 변화보다 심각한 문제는 낮은 GDP이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는 노력이 도리어 환경 파괴의 주범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셸런버거는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새삼 놀랍지 않았다고 느꼈던 이유는 계층 간에도 오르지 못할 사다리가 있고, 계층의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환경 문제에 있어 국가 사이에도 이런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환경 에너지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이미 간파하고 있으면서도, 저개발 국가가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도록 그들을 회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이미 우리는 극도로 개발된 상태이므로 덜 개발된 지역들에 환경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싶은 꿈을 품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환경 파괴를 이유로 모든 개발이 저지당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본인들은 개발을 위해 온갖 땅을 개간하고 숲을 파괴하면서 왜 자신의 국가에서는 모든 시도가 불가능하단 말인가.


기후 종말론은 자승자박일 뿐이다

미래에 대한 긍정과 기대를 품고 나아가다


환경 보호는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종교의 하나로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신재생 에너지는 낮은 효율에도 불구하고, '환경 양치기'들에 의해 지나치게 신성시되어 왔다. '마이클 셸런버거'는 환경 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그릇된 믿음이 도를 넘어섰다고 지적하면서 종말 위에 새로운 땅이 태어나길 바라는 태도를 벗어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무기력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로 종말론에 붙들려 있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이전과 달리 우리에겐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과 능력 또한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몇몇 주장은 종말론자들에 의해 과장되었고, "기후 변화가 불러올 모든 영향이 자연환경과 인간 사회에 나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고 '마이클 셸런버거'와 몇몇 과학자들은 덧붙인다. 환경 보호는 진정 환경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도리어 소수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환경 문제에 있어 인간의 입지를 줄이고자 했던 노력들과는 달리, '환경 휴머니즘'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인간 스스로에게 이로운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 궁극적으로는 자연을 보호하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지금부터의 환경주의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혐오하고 불가능한 도전들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모두를 긍정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기적이지 않은 '환경 휴머니즘'을 저자는 제안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비관적인 환경론자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데이터 이외에도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는 우리의 노력도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확실히 환경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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