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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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같은 노동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수록, 아마존 노동자들의 야영지는 점점 더 국가적 재앙의 축소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RV 주차장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당연시해왔던 중산층의 안락함에서 까마득히 아래로 추락한 노동자들로 꽉 차 있었다. 이 사람들은 최근 몇 십 년간 미국인들을 괴롭혀온 모든 경제적 재난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107쪽)

노마드적인 삶에 대한 열망에 한껏 취해있던 때도 있었다. 내가 어느 한 곳에 매여 기계처럼 일을 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던 고등학생 시절의 일이다. 단기성 일자리들을 전전하며 필요한 만큼만 돈을 벌고, 떠돌아다니는 삶의 자유로움과 행복을 친구들에게 거의 다그치듯이 강조했다. 하지만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 아래에서 그런 꿈을 꾼다는 사실을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우주 어딘가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부동점이 존재한다는 안정감이 없었다면 나는 노마드로서 살아가는 상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노마드'를 언급할 때 그건 주어진 삶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얕은 반항에 불과했다.

결국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내 치기 어린 상상과 달리, 『노마드랜드』에서 '밴 생활자'들의 삶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만큼 절박하다. 국가라는 거대 시스템에 의해 일방적으로 밀리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노마드적인 삶은 과거에 품고 있던 낭만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다. 그건 급박한 위기로서 실제로 나를 초조하게 만들고, 내 앞날을 심각하게 우려하도록 부추겼다. 『노마드랜드』를 읽고 난 지금의 나에게는 20대 특유의 낙관이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제시카 브루더'가 취재한 '린다'의 삶을 신중하게 새겨듣고, 내 앞날을 가늠하고 있다. 한편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삶의 끝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현시대의 부조리함과 자본주의의 비극 속 우리 모두에게 닥쳐올 미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우리 모두에게 "미래란 어떤 그림일까?(55쪽)" 하는 질문이 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곳에서만 살아갈 필요는 없어요. 그게 이 모든 것의 핵심이라고요!(215쪽)

'린다'를 비롯한 노마드들은 RV 차량을 집처럼 개조해 삶을 꾸려 나간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캠핑이라면 몰라도, 끝을 알 수 없는 밴에서의 생활은 불안정하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밴을 끌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삶은 수많은 변수와의 날선 전쟁에 가깝고, 그들은 언제든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할 준비가 된 사람들 때문에 항상 긴장된 상태로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을 지켜내야만 한다. 전통적인 거주공간은 거주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밴 생활자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취약한 부분을 드러낼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노마드들이 굳이 밴에서 거주하려는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위기에 처해본 적 없는 우리에게 그건 유일한 선택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좀 더 나은 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종종 우리의 상상 속 긍정적인 대안이 되어주었던 아메리칸드림과 코로나 발 경제 위기는 미국 중산층 노마드들과 우리를 동일선상에 세우고, 그들의 몰락과 그로 인한 참담한 선택이 마치 우리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다급하게 RV 차량을 대체할 만한 선택지들을 재빠르게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린다'와 그녀의 동료들은 절망적이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들은 집값을 덜어냄으로써 재정적으로 살아남는 데만 목표를 두지 않고, 진정한 성취와 자유를 찾아내 자신의 삶을 급진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들이 기어코 찾아낸 그 새로운 대안에도 물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유색인종에게는 이런 불확실한 대안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 '제시카 브루더'도 3년간 노마드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녀 자신이 밴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약간의 안정이라는 특권을 누렸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 같이 몰락해 가는 와중에 그 안에서도 계급 구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터무니없이 느껴지고, 삶을 크게 비관하도록 만든다.


점점 커지는 예금과 부채 사이의 간극에는 질문 하나가 매달려 있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겠습니까?(400쪽)

밴에서 생활하는 노마드 대부분은 자신들을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로 규정하기를 원한다. 미국에서 'HOME'과 'HOUSE'는 똑같이 집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원어민 선생님의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홈리스'는 집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곳 전체를 잃어버렸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적극적인 부정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노마드들이 '홈리스'로까지 나아가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일자리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때에 그들에게 솟아날 구멍은 전혀 보이지 않는 때도 있다. '노마드랜드'에서는 60대 이상의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므로, 신체적인 컨디션도 고려한다면, 위기로부터 벗어날 구멍은 점점 좁아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예금과 부채 사이의 간극'에 따라붙은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은 지금 여기의 우리와도 전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하우스리스'를 넘어서서 '홈리스'가 될 가능성이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 오고 있다. 예금과 부채 사이의 간극이 너무 벌어져서 걷잡을 수 없는 때가 되면, 그래, 그때 우리는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까. 막상 하나씩 소거하려고 보니 죄다 중요한 것들 투성이다. 눈앞에 놓인 삶이 갑자기 애틋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의 시선 바로 아래까지 다가온 '노마드랜드'가 눈을 뜨고 보면 실은 아주 멀리 있는 상상 속 공간이기를 바라고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제시카 브루더'는 '노마드랜드'의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도서를 몇 권 적어 놓았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은 밴 생활자들 사이에서 문학적 정전의 반열에 오른 것으로 간주될 정도이다. 이외에 '윌리엄 리스트 히트-문'의 『블루 하이웨이』, '에드워드 애비'의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 '존 크라카우어'의 『야생 속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가 있다.(본문 265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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