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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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화재 속에서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한 아이가 있다. 예고도 없이 불타오른 아파트로부터 아이가 살아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아이는 함께 집에 있던 언니의 놀라운 기지로 11층에서 내던져져 목숨을 구했다. 어렵게 얻은 목숨이지만, 그녀는 자신을 구원한 세상을 아주 많이 미워한다.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을 댓가로 얻어낸 생명이므로 그녀는 더 나은 인생을 살도록 강요받기 때문이다. 자신을 살려준 세상에게 그녀는 끊임없이 미안해야 하고, 또 고마워해야만 한다. 아이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내고 현명한 판단으로 어린 동생을 살린 후 숭고한 죽음을 맞이한 십칠 세 소녀"와 "자신의 몸을 불살라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을 실천한 사십 대 가장(45쪽)"의 그림자에 짓눌린 삶을 살았다. 아니, 대신 살아남았으므로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 애, "'원래 계속 자는 애'를 처음으로 깨운 수현(69쪽)"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니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언니는 나를 업고 다녔다고, 나를 끔찍이 아꼈다고, 나는 엄마보다 언니를 더 따랐다고 한다. 언니는 무엇이든 잘했따고 한다. 언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고들 하는데.(30쪽)"

화재가 일어난 이후로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사건은 꼬리표처럼 '유원'에게 달라붙어 있다. '유원'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 일을 모두 알고 있고, 어떤 프레임을 씌운 채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건 때로 삶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노력해야 한다는 강압이기도 하고, 혹은 죽은 언니를 대신해서 살아났다는 데 대한 동정어린 시선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유원'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언니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은 언니를 칭찬하기 급급했지만, '유원'은 시끄러운 세상에 자신만 살려둔 언니가 밉기만 하다. 언니는 죽음 이후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불멸하고, '유원'은 무슨 짓을 해도 언니의 존재를 연장시키며 보조하는 '증거품'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가 없다. 자신들에게도 없는 '희망'이나 '기적', '빛' 같은 단어들을 '유원'에게서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유원'은 스스로가 압축되고 있음을 절감한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트라우마였다. 사람들은 세상일을 모든 잘 잊건만, '유원'에게만큼은 가혹하고 잔인하게 잣대를 들이민다.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했다. 그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휘청거릴 때마다 수현은 나를 부축해 주었다.(198쪽)"

세상에 대한 미움과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유원'이 한없이 무거워지고 있던 시기에 '수현'이 나타나고, '유원'의 삶은 일변한다. '수현'은 '유원'이 굳게 닫혀 있다고 믿었던 어떤 문들을 자신만의 마스터키로 쉽게 열어젖힌다. '수현'과 함께하는 '유원'의 삶은 좀 더 세상을 향해 열려있고, 가벼우며 편안하다. 그러니까 결국 '유원'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인해 압박받고 있었고, '수현'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자신을 깨워줄 누군가를 기다려 왔던 것이다. '수현'은 아주 멀리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유원'이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유원'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고, 은밀한 몸짓으로 '유원'을 도와주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었던 대학생 언니처럼 말이다. '유원'이 '대신' 살아있다는 데서 느끼는 괴로움과 언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털어놓았다면, '유원'을 둘러싼 세계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여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식은 다르더라도, 다들 어렵게 살아난 '유원'을 깊이 애정하고, 지켜주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분명해 보였으니까.



"너 별로 안 무거웠다. 그냥…… 사람 몸은 원래 약하다. 다 잊어버려라.(201쪽)"

세상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는지도 모른다. 살 만하지 않은 세상으로 변해버리고 마는 건 결국 우리의 자기연민과 일방적인 미움 때문은 아닐까. 여린 영혼을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미련한 감정들로 자신의 무게를 채워나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짓누르던 감정들을 훌훌 떨쳐내고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복잡하게 세상을 이해하기 보다는 가볍게 던지고 또 가볍게 받아치면서 살아가고 싶기도 하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무척 너그러워진 기분이다. 높은 곳에 서려면 그래,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고 나면 내 두려움이 얼마나 별것 아닌 일이었는지를 알게 되니까,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곳을 향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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