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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
가키야 미우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3월
평점 :
결혼 활동이 이렇게 인생 공부가 될 줄은 몰랐어.(145쪽)
중국에서는 27살이 넘은 미혼 여성을 '잉녀'라고 부른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지카코'가 28세의 독신 여성인 딸 '도모미'의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카코'에 이어 아버지 '후쿠다'까지 가세하지만 '도모미'는 좀처럼 결혼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취업 빙하기를 거쳐 간신히 살아남은 '도모미'의 삶은 평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까지 에너지를 쏟아부을 여력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도모미' 세대는 결혼과 육아로 고생하고 자기 삶을 잃어버리는 어머니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으므로 그에 대해 어느 정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부모가 죽고 나면 형제도 없이 살아갈 현실을 줄줄이 읊어주자 '도모미'는 마음을 바꿔 결혼 활동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어렵사리 도전한 결혼 활동은 그러나 취업 빙하기 시절만큼이나 암담하다. 마음에 드는 남성을 찾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남자 쪽 부모님과의 세대 차이를 좁히기 위해 '지카코'도, '도모미'도 분투해야만 한다. 부모 대리 맞선과 이후 이어지는 결혼 활동을 통해 '도모미'와 '지카코'가 느끼는 씁쓸한 뒷맛은 소설 밖 나에게까지 전달된다.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는 현실 공감 100퍼센트가 아니라, 거의 1000퍼센트에 가까운 작품이다. 현실만큼이나 녹록지 않은 결혼 서바이벌에서 '도모미'와 우리는 결국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물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결혼만큼은 해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알 것만 같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 상대를 찾는 것부터가 곤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이모저모를 따지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 신상서를 교환하고, 그 과정 속에서 숱하게 거절당하는 맞선 활동은 아버지 '후쿠다'의 표현처럼 경마 경기 같기도 하고, 서바이벌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맞선 게임에서 '도모미'와 '지카코'는 삶에 대한 경험치를 쌓아 나가면서도, 한편으로 극도의 감정 소모로 탈진 상태에 이른다. 단순한 게임과 달리 결혼 활동은 인생을 배우는 지난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대적 혹은 가정적으로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간극을 좁히고 어울리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고, 앞으로의 사회적 변화까지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결혼은 기쁜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으로 변모한다. 결혼 활동을 통해 회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섞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했지만, 독신 생활도 나쁘지 않은데 결혼 활동에 뛰어들어 괜한 낭비를 한 것은 아닌지 '도모미'의 가족들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도모미'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카코'는 '좋은 결혼'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좋은 사람을 찾아낸 후 서로의 개성과 목표를 존중하면서 격려하며 나아가는 것,쯤으로 '좋은 결혼'을 정의 내릴 수 있겠지만, 부모 대리 맞선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면 '좋은 결혼'이라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결혼에서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좋은 사람'을 찾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은 세상인데, 아무것도 따지지 않던 연애 때와는 전혀 다른 결혼 앞에서랴. 아, 이건 소설일 뿐이다, 되새기면서도 세상에 대한 불신과 나 자신의 앞날에 대한 불안함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소설의 제목에 우리 어머니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이 책을 지은 '가키야 미우'는 일본 여성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정평이 나있다.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만 읽어 보아도 왜 그런지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지카코'는 부모 대리 맞선 활동에서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성들 이외에도 며느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는 여성들을 만난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을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는 편이지만, 그녀의 속내를 통해 우리는 작가 '가키야 미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지카코'는 아무렇지 않게 여성에게 돌봄 노동과 직장의 양립을 요구하는 남성들을 비난하고,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게 구는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녀는 또한 세상이 정해 놓은 여자들의 의무에 물음표를 그리고, 여성들은 누구에게든 애완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아직도 낡은 사고를 고집하는 사람들로 인해 한숨이 절로 나오다가도 작가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속이 다 시원해지고는 했다.
그러니까 제목과는 달리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는 미혼 여성에게 결혼을 압박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결혼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젊은 부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부모,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 배경까지 아우른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하나의 과정에 가깝다. 그 과정 속에서 물론 무기력해지고 상처받는 때도 있었다. 내가 겪고 있는 현실과 거리가 상당히 좁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지금에는 그 모든 일들을 겪어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 출판사 이벤트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