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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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 클라라와 태양. 어떤 다정한 손길로 인해 자꾸만 울컥하는 마음을 누르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어떤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탁월함은 수상 내역에서 엿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는 독자가 스스럼없이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이를 보듬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요란스럽지 않은 다독임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지, '가즈오 이시구로'의 글을 읽고서야 깨닫는다. 코로나 시대 이후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 '인간적'이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무엇을 정의하는지를 잊어버렸다. 차츰 비인간에 가까워지고 있는 우리와 진정한 비인간 AF(일명 Artificial Friend) '클라라'의 만남은 그래서 운명적이다. '클라라'와 우리 사이를 구별짓는 어떤 차이를 과연 발견해 낼 수 있을까. 혹은 이야기의 끝에서 결국 우리가 죽어버렸음을 인정해야만 할까.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구, 'AF'

 

'AF' '클라라'클라라와 태양의 세계관을 이끌어 나가는 핵심 동력이다. 'AF''클라라'와 인간 소녀 '조시'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상적인 부대낌이 거의 없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교류 모임에서 획득된다. 아이들에게 'AF'의 존재가 절실해져 가는 이 시점에 기계와 인간의 불화는 얼핏 상상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가 그려낸 세상 속에서 인간들 몇몇은 이미 'AF'에 의해 '대체'되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공격적인 커뮤니티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 우리가 '알파고'를 보면서 두려워하던 부정적인 미래가 코앞으로 닥치고야 만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공포심을 유발하는 'AF', 하지만 여전히 인간들에 의해 선택받아야만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AF'들은 버림받지 않는 미래를 위해 사람들에게 '중립적'인 미소를 짓는다. 점진적으로 인간과 흡사해져 가는 'AF' 가운데서도 '클라라'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다. 그녀는 마치 아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방한다. '클라라'는 기계적 업데이트가 아니라 인간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것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쉽게 얻어내고, 작품에 몰두하도록 만든다.

 

가끔 어떻게 '클라라'를 기계로 분류할 수 있을까 싶어지기도 하지만, 그녀는 의심의 여지 없이 'AF' 무리에 속하는 인물이다. '클라라'로 대변되는 'AF'에 대해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의견을 내세운다. 'AF'를 대단한 지적 능력을 가진 친구로 간주하고, 'AF'에 의한 대체는 '변화의 일부'였을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시'의 아버지 ''이다. '조시'의 어머니 '크리시''AF' 때문에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만, ''은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낼 수 있어 기뻐하는 기색이다.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넘쳐나니까 우리도 곧 '크리시'''의 얼굴을 하고 서로를 마주 보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오지 않은 세상에 대해 지금 여기에서 어떤 다짐을 두든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게 뻔하다. 겪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의 태도가 좀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간이 가진 유일한 장기인 적응력으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통과해야만 할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320)”

 

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문장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에 대한 ''의 질문을 고르겠다. 어색한 부분이 남아있기는 해도, 인간의 향상된 버전-그리고 추후 크게 향상될 가능성을 지닌-'AF'를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레 결점 많은 인간이 완전히 대체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져보게 된다. 우리가 'AF'만큼의 기량을 보여줄 수 없다면 '능률''효율'의 측면에서 봤을 때 도대체 왜 우리가 인간으로서 계속 세상에 남아있어야 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현 세대에서도 인공지능의 탄생은 종종 대체를 넘어서서 인간 종족의 소멸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 인간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그러니까 인간이 'AF'에 의해 대체되지 않아야 할 이유에 대해 물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올 게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심정이 되었던 것이다. 'AF''클라라'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조시'를 향한 따스한 애정을 보면서 아, 역시 인간의 운명은 이제 내리막길을 걷겠구나 하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절망한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클라라'는 다정한 손길을 내미는 일을 잊지 않는다. '조시'로 대변되는 인간 종족은 어느 것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다, '클라라'는 말했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442)" 인간 고유의 유한함 안에서 사소한 관계들을 진실한 사랑으로 촘촘히 엮어나가는 일이 인간인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희망이란 게, 지겹게도 떨쳐 버려지질 않지.(325)”

 

희망은 우리를 단단히 묶어놓았다

 

작품 속에서 '클라라''조시', '크리시', '', 그리고 '조시'의 가장 친한 친구인 ''을 하나로 묶는 것은 바로 '희망'이다. '조시'에 대한 애정과 그녀를 낫게 할 수 있다는 염원 혹은 희망은 그들에게 '인간성'을 부여하고, 그 자체로서 단단한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이는 'AF'''으로 여기고 무장한 공동체를 만든 사람들의 행보와는 전혀 다르다. '클라라'라는 '태양'을 중심점으로 두고 있는 이 공동체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하나로 결속된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동체이다. 소설 속 '태양'이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힘을 선사하듯이 '클라라',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인간들의 순수하고 진실된 애정, 순수한 희망 등은 코로나 시대의 인간 세계를 치유할 유일한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역시 클라라와 태양을 만난 건 어떤 기묘한 운명처럼 느껴진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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