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밤의 클래식 - 하루의 끝에 차분히 듣는 아름다운 고전음악 한 곡 Collect 2
김태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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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피아노나 관현악기를 배우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취미로 멋들어진 걸 내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람 속에서 나는 음악 학원을 드나들었다.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 나는 클래식 음악과 무척 가까워지진 못했다. 클래식 음악만 틀어주면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꽤 오랫동안 배웠던 음악을 그만두었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내가 클래식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달았다. 어른이 돼서 기회가 되면 다시 배워야지, 하던 중얼거림은 쉽게 실현되지 못한 채로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클래식이 내게는 음악 장르를 넘어서서 나의 과거이자 또 언젠가는 다시 만나고 싶은 미래이기도 하다. 그런 애틋한 마음으로 지내던 시기에 『90일 밤의 클래식』을 발견했고, 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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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총 90일 동안 각각 하나의 클래식 음악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90일 동안이나 꾸준히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픈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가 대중과 클래식 음악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담긴 『90일 밤의 클래식』은 클래식에 문외한인 독자들까지도 포용한다. 예능을 보면서 음악퀴즈가 나올 때마다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엇, 저거 나도 뭔지 잘 모르는데?' 하던 독자들이 상식 수준을 끌어올리고 싶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면서도 전혀 어렵지 않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 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90개의 장에 난해한 음악 이론보다는 음악과 관련된 특별한 서사들을 담아 누구든지 쉽게 공감하고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하이든'의 <교향곡 45번>은 곡이 끝나가는 시점에 갑자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씩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휴가를 떠나고 싶다는 욕구를 표현했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음악을 공부한다는 마음보다는 하나씩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듣는다는 태도로 책을 읽는다면 90일은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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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클래식』은 90곡의 음악들과 얽힌 비화들 이외에 '감상 팁'과 '추천 음반'을 추가적으로 구성했다. 음악만 들을 때는 제멋대로 해석하던 부분들을 저자의 '감상 팁'을 통해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고, 또한 더 깊고 풍부하게 상상을 곁들여 가며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추천 음반'이 수록된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이는 음악을 듣다 보면 하나쯤 소장하고 싶은 음반이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90일 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해냈으니 나 자신에게 하나쯤 선물을 해주어야 도리가 아니겠는가! 물론 수록된 90곡의 음악들은 'QR코드'나 '동양북스 홈페이지 도서자료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때도 있었다. 기어코 하나를 구매해서 오래오래 듣고 싶은 열의가 생겨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가 그랬고, '비에니아프스키'의 <전설>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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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만났던 곡들 중에서 'DAY 89'에서 만났던 <비올라 협주곡 2번 '항해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곡가가 다름 아닌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당연히 남성일 것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책을 읽다가 무심코 '그녀'라는 대명사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커플이 등장하면 그들이 당연히 서로 다른 성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하던 때처럼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샐리 비미시'는 내가 기억하기로 이 책에 나온 유일한 여성 작곡가였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직업들이 하나의 성에 고정되어 있을까. 아니, 직업이라는 범주를 넘어서서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하나의 성에게만 허락되어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인해 책을 쉽사리 덮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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