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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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성 작가 'G'와 10대 여자아이 'V'의 관계는 한 아이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탄생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아이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부모 사이의 반복되는 다툼이다. 침대 위에서 귀를 틀어막고 있는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부모의 싸움은 계속된다. 부모 간 전쟁의 끝에서 아이는 아버지를 잃었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사실 아버지는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마치 영원처럼 기다려 보지만, 아이는 끝끝내 아버지를 되찾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애정 하는 문단에 몸담고 있는 'G'를 데려와 아버지의 공백을 채운다. 소아 성애자인 'G'가 떠올리는 건 오로지 자신의 성적인 욕구와 글쓰기뿐이다. 'V'가 이 관계로 인해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맞게 될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G'를 보면서 소설 밖 우리의 분노는 들끓는다. 아이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탓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부모다. 아버지가 없다면, 그럼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가 저 지경이 되도록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V'의 어머니는 'G'와의 관계를 인정했다. 딸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다. 20살에 출산을 하고, 줄곧 남편의 폭력 속에서 살아온 'V'의 어머니는 'G'가 진심으로 자신의 딸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소아 성애자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V'에게 버림받은 'G'는 어느새 '가여운 사람'이 되어 있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어머니의 무지함을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녀 하나만 소아 성애를 정당하게 본 것이 아니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유명한 문인들이 한 데 모여 서명을 하고, 소위 지식인들에 의해 세상은 빠르게 납득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의식이 결여된 세상에서 'V'는 구원될 기회를 잃고, 'G'의 '공모자'로 낙인찍힌다. 거대한 사회 시스템마저 아이의 양육을 포기했으니 아이는 유령처럼 세상을 떠돈다.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가면을 써가며 부단히도 애를 써 보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앞에서 수많은 루머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한다. 성적 만족보다는 애정을 갈구하는 몸짓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자기 신체와 성적 욕망에 대해 성인만큼 이해하고 있다고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G'에게 가해지는 비난은 얼마 못가 시들시들해진다. 어린 'V'에 비하면 'G'는 약삭빠르고 자신의 결점을 변호할 능력이 뛰어나며 사람들이 쉽게 망각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G'는 'V'를 궁지에 몰아넣은 채로 숱한 팬을 거느리고, 작가로서 유명세를 떨친다.

'G'라는 이름의 작가를 비롯해 문단 전체의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쓰인 《동의》는 소설 밖 독자에게도 비난을 가한다. 'G'의 글들이 흥미로운 단어들로 엮인 문학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간주될 때 'V'의 삶은 점진적으로 붕괴되고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텍스트들을 읽어 나가고 있었는지를 다시금 점검하고, 또 다른 증언들이 나타났을 때 우리가 마땅히 어떤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지를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동의》는 곳곳에서 새로운 증언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는 이때에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유년기, 청소년기, 그에 대한 아무런 향수도 없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한 채 자신을 내려다 보며 위에서 떠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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