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이고 강인한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나는 그녀의 연기를 퍽 좋아한다. 영화 <콜레트>도 순전히 그런 이유에서 관람을 한 것이다. 영화를 본 이후로 나는 ‘콜레트‘의 작품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녀를 존경하고 애정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영화 속에서 마주한 건 ‘콜레트‘가 아니라 결국 ‘키이라 나이틀리‘였는지도, 혹은 그 둘 다였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가려지지 않은 욕망과 단단한 냉철함은 매력적이었다. 작가를 좋아하면서 그 작가의 작품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어딘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녀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늘 나를 괴롭혔다. 그러면서도 집에 꽂혀 있는 『파리의 클로딘』에는 손이 가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압박을 느끼던 시점에 『여명』을 읽게 되었다. 『여명』을 읽는 동안 나는 종종 도로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만큼 더운 한여름을 떠올렸다. 어느 계절보다도 활발하고 열정적인 그때에 나는 조금은 몽롱한 기분으로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서 있다.

창에서 뛰어내린, 아직 정체불명의 이 새벽이라는 친구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변화하는 형태를 완성할 시간이 부족해는 지, 그것은 땅에 닿은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과정에 참여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176쪽

소설 『여명』에는 작가 ‘콜레트‘의 실제 삶이 혼재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건 어쩌면 ‘자전적 소설‘로 분류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작가 ‘콜레트‘의 어머니 ‘시도‘이다. 모든 것은 어머니 ‘시도‘에게서 시작되어 끝이 난다. ‘시도‘는 소설의 처음에서 자신의 딸인 ‘콜레트‘를 보러 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 4년에 한 번만 꽃을 피우는 붉은 선인장 꽃이 곧 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학과 현실에서 어머니들에게 강요되어 온 희생과 그로 인한 억울함을 떠올려 본다면, ‘시도‘의 행보는 독보적이다. 사랑이란 감정이 명예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결국 그것으로부터 끝끝내 분리되지 못한 ‘시도‘는 사랑에 헌신적이되 의존적이지 않다. ‘시도‘와 ‘콜레트‘의 관계 또한 상대와의 유사성으로 얽혀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너무 들러붙어 있지 않다. ‘콜레트‘는 어머니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머니의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글을 쓴다. 자신과 그토록 닮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어둠에서 깨어나 여명을 맞이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새롭게 맞이한 새벽에서 우리는 더욱더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콜레트‘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머니의 삶과 죽음 그 이후의 모든 것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그 모습 그대로이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게 세상 속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살아가려는 ‘콜레트‘의 삶은 생생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나에 대해 아는 것들, 감추고자 애썼던 것들, 생각해낸 것들, 짐작했던 것들을 정리해온 이 종이 위로 달리는 내 손을 새삼 왜 멈춘단 말인가? 사랑이라는 재앙, 그 과정들, 그 이후의 일들, 이런 것들이 한 여자의 진정한 속마음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78쪽

『여명』은 우리에게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어머니 ‘시도‘에게서 딸 ‘콜레트‘로 이어진 사랑의 서사로부터 작가는 이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여기에서 ‘콜레트‘가 떨쳐내려고 하는 사랑의 대상이 나는 어쩐지 ‘콜레트‘의 연인 전부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의 어머니를 지칭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콜레트‘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집요한 감정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려는 다짐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무수한 감정들과의 지긋지긋한 전쟁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 ‘콜레트‘는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려고 한다. 그 새벽으로부터 시작된 삶 속에서 ‘콜레트‘는 어머니와 자신의 연인들이 주었던 사랑을 기반 삼아 나아갈 것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마다하지 않고, 모든 일을 중단한 채로 평생 다시 보지 못할 선인장 꽃의 개화를 기다리던 자신의 어머니 ‘시도‘처럼 자신의 삶과 또 결코 포기하지 못할 사랑이라는 감정을 열정적으로 감각하면서, 그녀는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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