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그건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본문 39쪽

나는 끈기가 좀 모자란 편이다. 그래서 결말을 알지 못하는 드라마가 수두룩하고, 할 줄은 알지만 잘한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단계에 있는 장기가 몇 개쯤 있다. 평소의 나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작가 문지혁의 신작을 발견했을 때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는 사람이 나일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처음엔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습득하는 수강생들에게 마음이 동해 듣게 되었다. 이후에는 꽤 먼 이국 땅에서 나와 같은 언어를 공유하게 된 사람들에게 정을 떼기가 어려워서 그만둘 수가 없어졌다. 한국어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나 또한 처음으로 ‘안녕‘과 ‘하세요‘를 떼어 읽게 되었고, 그렇게 안녕을 묻고 답하면서도 전혀 안녕하지 못한 나와 우리의 인생 때문에 클립을 듣다가 울기도 많이 했다. 한국을 떠나서야 한국에 있던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게 되듯이 한국어를 외국어로 대하는 사람들을 보고서야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그것과 깊게 연결된 나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 모국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내게 준 부모를 떠올리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모국어의 일부를 조금씩 잃기 시작한다. 끝끝내는 그 일부를 되찾지 못한 채 세상과 등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모국어의 소실이 진행되는 동안 당연히 그것을 물려준 부모도 야금야금하다가 어느새 불쑥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나는 이 작품을 끌어안고 한없이 가라앉게 된다.

《초급 한국어》를 통해 한국어를 함께 배우면서 이전엔 별것 아닌 문장들도 곰곰이 되짚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너는 누구니? 어디로 가고 있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113쪽)˝ 외국어를 배울 때만 해도 해당하는 문장들을 암기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느라 바빴다. 하지만 그게 내 모국어인 경우엔 차원이 다른 깊이로 내게 다가온다. 안녕하세요?라는 형식적인 인사 앞에서 우물쭈물 거리게 되었듯이 초급 단계의 한국어 문장들 앞에서 나는 번번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질문에 맞는 대답을 막상 뱉으려고 보면 내가 정말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지금 무엇을 하고, 또 그것을 하는 동안 안녕한지를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국어로 이루어진 쉬운 문장에도 대답을 망설이는 나 자신을 보면서 새삼 내가 삶에 있어서는 초급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직 삶의 결괏값이 제로에 가깝지만 그건 절대 불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금만 잘해도 칭찬받고 상을 받던 어린아이가 다시 될 수 있으니 오히려 기쁜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두 번째 시간에 관해 묻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들에게 내 수업은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

본문 128쪽

‘초급 한국어‘ 강의 중 시간 강의에서 작가가 건넨 질문이다. 새삼스레 나는 모국어와 함께 살아온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짚어 본다. 나의 경우엔 스스로를 아주 많이 미워하던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과거를 들여다본다는 건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갉아먹던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야겠다 : ˝반듯한 게 어때서요,라고 해야지.(149쪽)˝ 내가 미워하지 않더라도 억울하게 미움받을 일은 차고 넘치고, 또 그렇게 스스로를 해치기에는 네가 모국어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다, 고 그 애에게 전해야 할 것 같다.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무엇보다도 현재의 나 자신까지 모두 안녕하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어준 당신의 삶도 아주아주 안녕할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