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유튜버처럼 다들 한 번씩 연예인으로서의 삶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장래희망 가운데서 연예인을 고른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게 오롯이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무대에 오르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내가 품을 수 있는 최대치의 희망이었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중고등학생 시절을 ‘스노볼‘에 가서 나만의 ‘드라마‘를 완성시키는 꿈 하나로 버티면서 살았다. 내 능력 밖의 일이었고,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종류의 목표가 아니었지만 나는 조용히 끈질기게 ‘스노볼‘을 바라봤다. 나의 오래된 꿈에 균열이 생기고, 그것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렇게 꿈과 현실 사이에 어중간하게 나 자신을 걸쳐 놓은 채로 살아가던 중에 내 또래의 연이은 죽음을 접하게 되었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웃음을 종용 받던 그들은 자신을 없애는 방식으로 미디어 시스템, 더 나아가 현 사회의 민낯을 똑똑히 드러냈다. 애도는 아주 짧았고, 그들의 죽음은 끝내 대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끝없는 책임감에 짓눌린다. 한 시대를 공유하면서 그들에게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던 내게 그 죽음들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들의 삶과 밀착되어 있던 만큼 내 안의 한 부분은 영영 회복되지 못하리란 예감이 든다.

《스노볼》의 ‘고해리‘를 보면서 이미 죽은, 혹은 죽어가고 있을 얼굴들을 떠올렸다. 아니, 우리 모두는 ‘고해리‘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에서 각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해리‘는 ‘공평함‘을 추구하는 기존의 시스템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사람 전부를 대변하는 이름이다. 우리는 시기와 장소만을 달리할 뿐 삶의 운전대를 ‘차설‘과 같은 ‘디렉터‘들에게 넘겨준 채로 대부분의 인생을 살아간다. 아무 거리낌 없이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또 본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일에 순수하게 기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른이 되어서도 온전히 나 자신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고, 막상 그럴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꽤 긴 시간 동안 타인에게 내맡겨졌던 관성에 끌려간다. ˝내일의 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또 다음 날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434쪽)˝을 소중하게 여기는 건 그럴 자유가 주어지는 처음 그 순간 아주 잠시뿐이다. 타인에 의해 계획된 대로 ‘고해리‘로서의 가면을 쓰고, 그 삶에 순응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에 우리는 주저 없이 나 자신이기를 포기한다. 허상을 좇지 않으면서 나 자신이 되려면 끝없는 불확실성과 싸워야만 하고, 어른으로서 짊어져야만 하는 책임이 불어난 상황에서 이를 감내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바깥세상‘과 ‘스노볼‘로 이분화된 세상에서 후자를 지켜내기 위해 ˝살아 있는 시체˝가 되어 ˝미지의 발전소(427쪽)˝를 유지하는 동력원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해당 발전소 이외에도 ‘바깥세상‘의 수많은 발전소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쳇바퀴 돌리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고해리‘로서 사회의 시스템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각성‘하는 일이 필요했다. 불확실한 싸움이지만 그런 ‘인식‘과 ‘각성‘, 그리고 나 자신이 되려는 노력이 있어야 이용만 당하는 삶이 끝나고 진짜 삶을 향한 ‘문‘이 열리는 게 아닐까. 언제 누구로 대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해리‘라는 허상을 좇고, 혹은 허상을 좇아야 한다는 강요에 순순히 응하면서 나의 삶은 여기까지 떠내려 왔다. 그런 삶이 괜찮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나 미래의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나 자신으로 또렷하게 존재하는 삶은, 그런 삶이 주는 순수한 기쁨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불확실성을 향한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침묵하거나 그 속에서 행복을 강요받는 삶은 이제 살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또 사랑받는 날이 올 때까지 ‘고해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안녕하기를. ˝부디 살아있기를(454쪽).˝ 또 다른 ‘고해리‘의 죽음과, 그것이 우리 중 누군가에 의해 손쉽게 대체되는 일을 목격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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