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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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무언가를 써내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들었다. 생을 압축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페이지 안에서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삶을 살아내며, 무지한 독자인 나를 꾸짖었기 때문이다. <철도원 삼대>는 더욱이 그랬다. "같이 좀 살자(410쪽)"는 작은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마음이 못내 아쉬워서 나는 책표지를 몇 번이나 쓰다듬고 나서야 어렵사리 정을 뗐다. 하지만 '이진오'와 그의 가족이 내 삶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 산업 노동자의 역사를 그려내고자 한 <철도원 삼대>를 통해 나는 그들의 삶과 얼마간 엮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후의 나는 산업 노동자의 소식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노동자로서의 자아가 부각된 채로 사회의 굴러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굴뚝에서 농성 중인 '이진오'의 이야기로 작품은 시작된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이진오'가 기울인 노력의 기저에는 역사 속 산업 노동자들의 피와 땀, 눈물이 서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진오'의 굴뚝 농성은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한국의 노동 사회에서 그는 "1970년대의 전태일 선배와 세기가 지난 2003년의 주익이 형의 유서(408쪽)"를 등에 짊어지고 있다. 노동 운동의 전면에 내세워진 남성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든든히 가정을 지켜주었던 여성들도 물론 배제될 수 없다. 죽음 이후에도 중요한 때마다 등장해 가족의 생과 사를 돌봤던 '주안댁', 그런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신금이' 등의 여성들은 이념을 위해 싸우는 남성들을 대신해 현실적인 문제들을 씩씩하게 해결하며 한국의 현재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해 주었다.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산업 노동자의 싸움은 그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그들은 '빨갱이'로 내몰렸고, 투쟁의 본질은 흐려졌다. 하지만 작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 의사 '리외'가 말했듯이 이건 어휘의 문제가 아니다. 저기에 죽어가는 생명이 있고, 우리는 그들을 소생시키기 위한 공동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나가야 한다. 그들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워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은 누군가의 인권 앞에서 무의미하다. 산업 노동자들은 사회의 정상적인 질서 속에서 같이 살아가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응당 그래야만 하는 일들을 스스로만 보장받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내로남불' 식의 언행을 지속해 왔다. 우리는 이제껏 내게 주어진 권리를 타인도 동등하게 부여받을 수 있기를 원하기보다 사회가 암묵적인 약속을 기반으로 별 탈 없이 조용히 굴러갈 수 있기만을 바라왔다. 공공연하게 큰 목소리를 내어 주장하는 것이 마땅히 칭찬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오늘도 외로운 싸움을 지속한다. 수많은 얼굴을 한 '이진오'는 오늘도 굴뚝을 기어오르고 있다.

<철도원 삼대>의 세계에서 작가 황석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비관하지만은 않는다. 겉모습은 달라지더라도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았던 "성난 물결의 소용돌이 같은 세월(604쪽)"을 지나온 작가의 깨달음은 작품 내내 빛을 발한다. '이진오' 일가의 삶을 통해 작가는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207쪽)"을 전하고자 했다. 더불어 그런 믿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는 다독임을 보낸다. 울고 불며 20대를 통과한 이후에는 나도 삶의 지루한 사이클을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통과해 지나간다.

최근 몇 년 새에 참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그들의 이름, 그리고 시작과 끝에 관한 숫자를 신문기사에서 읽으면서 나는 줄곧 숫자와 숫자 사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살았음에도 그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쩐지 비통하게 여겨진다. 돌이켜보니 한국의 역사와도 그만큼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시기적으로 가깝지 않으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고 자란 땅에 묻혔을 수많은 이들을 떠올리면 아쉽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황석영과 같은 이들의 증언이 젊은 독자에게 더없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허구의 것이라도 그것은 분명 어떤 이들의 삶을 기초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철도원 삼대>를 읽으면서 내가 놓치고 사는 세상, 또 그 안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스레 실감한다. 그래서 자꾸만 울컥해지고, 그것을 내리누르려 한숨을 내쉰다.

 

조선에서 해방은 1945년 8월 16일 하루뿐이었다. - P520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 - P564

세상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진 않고 늘 미흡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시간이 무척 오래 지나서야 그러더군요.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우리는 먼지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아요. - P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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