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응당 무언가에 대항해야 한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적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는 것으로부터 문학의 가치가 비롯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앞뒤가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져야 했고, 현실의 궤도로부터 멀어져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모퉁이에서 가볍게 술술 읽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발생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사건들을 종이 위에 몽땅 쏟아냈는데, 처음엔 물론 의구심을 가지고 읽지만 나중에는 작품이 가진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이것저것 재고 싶지 않아져 버렸다. 이토록 무해한 귀여움으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현실의 잣대를 들이밀어 무얼하나, 싶도록 그들은 살면서 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천진하고 사랑스러웠다.
정세랑 작가는 누구보다도 유쾌하고 밝은 환상의 세계를 조성한다. 이번에 읽은 <보건교사 안은영>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정말 이런 식상한 문구를 문장 사이에 끼워 넣고 싶을 정도로) 맑은 사람들이 한가득 선물처럼 담겨 있었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분할한다면 우리는 이곳의 밝음을 모두 ‘정세랑 월드’의 캐릭터들에게 빚지고 있을 것이다. ‘인표’에게 ‘은영’이 수면등에 비유될 수 있는 것처럼 내게는 그들 모두가 그랬다. 이렇게 지칠 줄 모르고 빛나는 작품을 계속해서 뽑아내는 정세랑 작가 덕분에 나는 여전히 인간성을 믿고 내가 사는 세상을 지지한다. 소설 속의 세계에 불과하고 언젠가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보건교사 안은영> 속 모든 이들에게 애틋함을 품어 버린다. 굴곡진 삶 속에서도 온통 다른 삶을 구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은영’과 삐걱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힘차게 뛰어다니는 ‘인표’의 손을 마주잡고 싶다. 그들과 함께라면 나는 아이들의 눈 안에서 번뜩이는 빛을 지켜줄 수 있을까.

“즐겁게 쓴 이야기라 영원히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또 이어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277쪽)”

독자로서도 삶의 부정적인 에너지 전부로부터 분리되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이야기가 언젠가 다시 또 이어진다면 좋겠다. 내가 사는 세상이 미워 보일만큼 강력하게 아름다운 환상이 그때 또다시 펼쳐질 수 있기를 바란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주인공과 악의 없이 선생님을 따르며 오리를 아끼는 순수함으로 훌쩍이는 아이들이 가득한 곳, 나는 주저 없이 또 정세랑 월드를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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