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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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토록 제목에 충실한 작품집을 본 일이 없다.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는 각각의 작품 속에서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탐구했다. 이 책은 집요하게 단어들을 골라내고 또 그것들을 엮는 과정 속에서 아주 가뿐하게 내가 알던 현실을 뛰어넘으면서도,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소설 속 세상이 나의 바로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으리란 인상을 주었다. 두려움으로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의 세계를 배신하기란 어렵다. 내가 지하철에 서있다는 사실마저 잊은 채로 나는 그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에는 언제나처럼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은 애초부터 내게 낭만을 꿈꿀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 사이에는 광적인 집착이 놓여있다. 순수하고 단순한 로맨스 서사는 싫증이 난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본래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광기가 섞여들면 독자가 벌써 진절머리를 내며 도망쳤어야 옳다. 하지만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거기에 나 자신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광기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는 그들의 욕심이 나의 것과 흡사했으므로 달아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물질에 대한 갈증과 더 많이 가지려는 고질적인 습성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 놓인 독자 전부에게 귀속된다. “그때라도 욕심을 버렸어야 했다.(209쪽, 「천연 꿀」)” 그걸 알면서도 무심결에 딱 한 번의 실수로 삶의 구렁에 빠지게 될 가능성을 인간인 우리는 모두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의 작품이 설득력 있게 들리고, 미친 짓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문장에 들러붙게 된다.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인간의 광적인 집착만을 파헤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광견병에 걸린 개가 되어 미친 듯이 사람들에게 쫓겨 다닌다. 죽음 이후에도 ‘코카인’을 울부짖는 사람과 광기로 인해 위협적인 존재로 변모한 개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광견병에 걸린 개」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지워버리고 인간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그들의 광기가 일상적인 것에 단지 한 발 더 나아갔을 뿐이라는 사실을 되짚어본다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시작에 사랑이 있었다면 그 끝인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적절한 때에 집착적인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이들의 죽음은 비참하다. 짐승과 같은 본능적이고 성급한 갈망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들의 삶은 연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극적인 죽음임이 분명한데도 감정 과잉을 이끌어내는 일은 없다. 여전히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이고 일상적인 과정이란 인식이 더욱 생생해질 뿐이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우리는 “이미 내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최면상태로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92쪽,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배」)”인다. 삶을 향해 애를 쓰다가 진이 빠지면 우리는 타고 있던 배에서 바다라는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수많은 죽음을 겪어야만 했던 작가 본인의 경험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내가 당신이라면 당장 그녀를 찾아갈 겁니다.(290쪽, 「음울한 눈동자」)”

광기와 사랑이 뒤섞인 세상 속에서, 또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게 될 삶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해야 한다. 나는 작가의 ‘음울한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과 거리를 잴 수 없는 죽음과의 관계를 떠올리면 때로는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진다. 삶을 향한 애씀이 무용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권위인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지난한 인생 속에서 글쓰기를 붙들었을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의 강인한 생명력을 떠올릴 때면 숱한 아이러니로 가득찬 지금을 견뎌내야 한다고, 그 안에서 무언가라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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