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일방적으로 여성의 시각에서 영화를 읽어내기 위해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을 구매하게 되었다. 동명의 팟캐스트도 그 존재를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존경할 만한 전문적인 여성 직업인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녀들은 내가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었다. 여성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누군가 들을 원망하며 해당 작품을 읽기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 가해자나 또 그만큼 무심한 남성들을 논할 것도 없었다. 나 또한 같은 여성이면서도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적당히 어물쩡거리며 온갖 사건들을 지나쳐 왔기 때문이다. 처참하게 짓밟힌 인권을 목격하면서 내가 그녀들과 똑같은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낮은 곳으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너무 내 구역만의 권리만을 주장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연대를 알게 되었고, 내가 나아가야만 하는 방향을 제대로 설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여성의 인권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가부장제를 깨부수려는 노력은 여성 이외에도 다양한 소수자의 인권을 되찾기 위한 시도다. 나는 일찍이 이렇게 아동, 여성 등의 피해자가 중점이 되는 방송을 만나본 일이 없다. 그러므로 ‘연대‘라는 하나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조성된 작은 세상이 오래도록 군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우리가 이토록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에 열광하는 이유는 사실 희망적인 메시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과거의 영화를 분석하다 보면 예전에는 정말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멀쩡한 채로 살아왔을까, 싶은 지점들이 드러난다. 이전에 비해 분명히 나아진 현 세계를 새삼스럽게 마주하면서 우리는 스스로가 했던 유의미한 노력과 그것이 만들어낸 성과를 실감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런 장면의 발굴이 사회에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제공한다는 점이 해당 프로그램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경악스러운 범죄를 논할 때마다 꼭 꺼내게 되는 주제가 ‘경찰의 무능력‘이다. 당연히 ‘범죄 영화 프로파일‘ 내에서도 자주 그에 대한 내용이 오고 간다. 그때마다 이수정 교수는 한국의 형사사법시스템에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에 관해 언급한다. ‘스토커 방지법‘처럼 아직도 구멍은 존재하지만(프로그램에서 종종 언급되었던 ‘의제 강간 연령‘은 2020년 5월 n번방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기존 13세에서 16세로 상향 조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 피해에 공감하고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자포자기의 마음보다 ‘마지노선‘을 끌어올리고 싶은 의지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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