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인종주의 민족주의 종족성의 정치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성백용 옮김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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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창작과비평에서 이 책에 관한 촌평이 실린 것을 보고 책을 구입하긴 했지만, 사실 작년부터 눈여겨보던 작품이었다. 책을 구매하는 데에는 갖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나는 제목을 보고 어떤 의무감에서 이 책을 사게 되었다. 제목 중에서도 '아프리카'라는 단어에 초점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작가의 작품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녀는 아프리카 대륙이 하나의 국가처럼 여겨지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고, 세계질서에서 지속적으로 차별받고 배제되는 일을 비판했다. 나 또한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가진 개별적인 특수성을 거의 무시한 채로 살아왔으므로 아디치에의 발언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이제껏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아프리카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세계체제와 아프리카>를 읽기 시작한 동기는 무지에 대한 수치심과 그것에 대한 미안함이다.

<세계체제와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 각각의 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체제에 관한 연구결과가 집약되어 있고, 아프리카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지향점을 짚어내고 있다. 게다가 '인종'과 '민족'을 근원부터 파헤쳐 보는 것으로 독자의 지적 욕구를 충분히 채워준다. 인종주의·민족주의 정치는 지치지 않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므로 이에 관해 깊이 있게 살펴보고 논의를 시작하는 일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인종과 민족에 의한 차별을 거부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으면서도, 그것의 시발점에 관한 배움의 기회는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인종과 민족으로 세상이 구분 지어진다면, 억울함을 겪어야 하는 것은 황인종이자 아시아인인 우리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므로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저작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책에서 거의 매 장마다 세계체제가 과도기에 놓여 있고, 다음 단계의 성공 여부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다,라는 말이 반복된다. 확실히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양극화로 인해 증폭되었고, 다음 단계로의 이행이 불가피하게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는 상위 20%가 있다면, 필연적으로 하위 80%가 존재하는데, 해당 구조가 거의 고정불변의 것이며, 계층적 사다리는 극복 불가능한 종류의 것임이 판명되면서 사람들은 현 체제에 회의를 느끼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의 체제적 이행은 마치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처럼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이내 곧 멀어지고야 만다. 우리는 이전과 달리 민족적으로 해방된 더 평등한 세계체제로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또 내가 속한 세대 내에서 이뤄질 수 있는 일일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고작 반세기 정도 이전의 일이고, 평생 공고한 위치를 섭렵하리라 믿었던 두 체제가 다른 사상에 의해 대체되리라는 예측은 새삼 놀랍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한국이 핵심부에 자리를 잡지는 못하더라도, 제 나름의 발전 과정에서 자신만의 체제를 구축하며 오래도록 존속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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