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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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그리고 촌평 파트에 선정된 적지 않은 작품 목록 중에서 정세랑 작가의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단박에 골라내었다. 이 작품에 유독 마음을 쓰게 되었던 것은 정세랑 작가의 이전 작품 <지구에서 한아뿐>을 아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소리를 내어주겠다는 어마무시한 선언이 내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데, 어째서 그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나서는 것일까. 성대의 떨림을 통해 누군가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많은 경우에 스스로의 몫을 확보하기 위해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자발적으로 박탈당하겠다는 것이 의아했고, 우려스러웠다. 그게 내가 다른 작품을 제치고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가장 먼저 읽게 된 이유다.

정세랑 월드의 매력 속으로,

작가 정세랑의 글은 매 문장마다 자기주장이 확고하다. 작가가 누군지 명시되지 않더라도, 그의 글을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바깥 세계의 현실적이고 복잡다단한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일은 뒤로 밀려난다. SF 소설 형식을 빌려 마치 초등학교 시절 과학 상상 그리기 대회에서 그리던 그림처럼 색다른 세계를 조성하고, 누군가를, 혹은 더 나아가 이 지구를 사랑하는 일을 더 부지런히 해낸다. 문장에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감지해 냈다면, 그건 정세랑 작가의 글이 분명하다. 이전 작 <지구에서 한아뿐>도 넘치는 다정함으로 독자들의 피드를 휩쓸었다. 아, 그는 독자에게 지구가 직면한 위기를 일깨우는 일에도 여념이 없다. 작품을 읽다 보면 나의 사소한 행동이 초래한 결과에 뜨악해지고, 지구에 엎지른 물을 주섬주섬 주워 담고 싶어진다. 때로는 과격한 방식으로 지구의 종말을 예고하는데(예를 들어 <리셋>에서 거대 지렁이가 지구를 갈아엎는 방식으로), 그것이 임박한 위기라는 점은 자명하므로 또 한 번 섬뜩함을 느낀다. 그의 종말 시나리오가 실현 가능한 종류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정세랑 작가의 글은 그날 하루라도 텀블러와 에코백을 챙기게 만드는 유효한 충격요법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세랑 식 낙관적 시선이나 전망, 인간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이 쉽사리 동의되지 않는 까닭이지요. 잘 될 거라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와 다른 국면도 좀 더 그려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계간지 창작과 비평, 316면)."

한편으로, 이번 좌담에 초대된 이근화 시인은 정세랑 월드에 관해 위와 같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워낙에 탄탄한 팬층을 자랑하는 작가이지만 시인의 우려를 이해할 수 있다. 작가 정세랑은 인간의 횡포를 경계하면서도, 사람에게 존재하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 끝끝내 세상을 소생시킬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문제에 관해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좀 더 머리를 쥐어 싸매면서 어떤 대책을 마련해 내고 싶은 욕구가 해결되지 못한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월간 채널예스' 2월호에서 작가는 가볍게 술술 읽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다짐을 전달했다. 이미 생각의 포화가 수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삶 속에서 자신마저 고민을 보태고 싶지 않다는 명확한 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사랑스러운 필력에 크게 힘입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이와 같은 행보에 동의를 표한다. 어쩌면 불가피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인간과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애정을 정세랑 작가가 아주 오래도록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어느 행성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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