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 나의 어머니/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_노래 ‘엄마’ 중에서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왜인지 나는 자꾸 나의 엄마, 어머니에 대해서 떠올렸다. 대상을 수상한 작가 강화길의 소설 <음복>이 맨앞에 배치된 까닭에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또, 이제는 카톡에서 갑작스레 접하게 되는 소식이 누군가의 결혼이고 임신이기 때문에 내가 작품들에서 ‘엄마’라는 키워드를 읽어냈는지도 모른다. 작가 강화길은 '음복'에서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온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녀들을 지켜보며 아버지와 삼촌에 비해 뒤로 밀려난 엄마의 삶을 새삼스레 되짚어 보았다. 엄마는 어릴적엔 남자 형제를 위해 적지 않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고, 이후에는 오로지 자식의 성취만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며 살았다. 가족들 사이에서 ‘악역’을 떠맡아 왔음에도 돌아오는 보상은 극히 적은 탓에 그의 삶은 억울하고 한스럽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적을 가하는 것은 전부 여성 어른들이었다. 방관하고, 농담으로 웃어 넘기는 남자 어른들과 달리 그녀들은 나의 미움을 독차지 했지만, 종종 원망과 증오를 발판 삼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음은 분명하다.

엄마라는 직업은 자식의 ‘그런 생활’을 수없이 막고, 아이와 대립각을 세워야만 하는 부담을 껴안는다.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잔소리 대마왕’이라는 이미지를 떠안는다. 하지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행동들이 늘 옳은 것만은 아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더 단단한 지지대를 마련해 주고 싶은 바람으로 길을 제시했으나 그것이 철저한 오판일 때도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보다 세상을 오래 살아본 어른이라는 오만으로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지 않고 집착하는 경우다. 세상과 아이를 오판하는 엄마의 모습은 자신이 가진 인지 공간이 전부라고 믿고, 이외의 다른 방식은 수용하지 않으려던 '제나'와 닮아 있다(김초엽, <인지 공간>). 오판과 오만으로 막아선 아이가 다른 곳에서 눈이 따끔거리도록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부모는 아이의 방식을 인정하고, 지난날을 후회하고야 마는 것이다.

내가 뭘 하고 다니든 개의치 않는 방관자인 아빠와 달리, 엄마는 사사건건 일단 나를 멈추고 보는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많이 다투기도 했고, 인생이 틀어질 때마다 모든 공을 엄마에게 돌리기도 했다. 엄마도 엄마로서의 인생이 처음이고, 특히 첫째인 내게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엄마'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좇고 싶은 빛이다. 그녀가 소싯적 꿈꾸던 성공한 커리어우먼은 못 되었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그녀의 짓눌린 삶을 알기에 그 빛은 희미하지 않고, 완전하고 또 강렬하다.

나는 자신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과하는 엄마를 보며 비혼주의의 길을 걷게된 '주연'(장류진, <연수>)과 닮아 있었다. 그녀처럼 억울한 삶을 떠안고 살만한 자신도, 억척스러운 엄마가 될 자신도 없어서 이기도 하다. 엄마의 반만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동생과 자주 얘기를 나누곤 한다. 살다가 혹여나 내게도 엄마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의 엄마보다는 훨씬더 자신을 돌볼 줄 알고, 스스로의 성취에 의해 기쁨을 누릴줄 아는 여성이 될 수 있으면 한다. 엄마도 책장에 가득찬 육아 서적만큼 수많은 다짐을 했다가 좌절하고야 말았겠지만. 그러나 이런 결심은 엄마로서의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여성들에게 여전히 중요성을 가진다. 엄마라는 단어가 더이상 희생으로만 치환되지 않는 것, 그것은 나를 비롯한 새시대의 엄마들이 꼭 이뤄내야만 하는 숙제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에 관해 얘기하자면, 그에게서 잉태되는 새 생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현석 작가는 <다른 세계에서도>라는 작품을 통해 어린 생명의 타의적인 죽음에 관한 논의를 시도한다.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격한 입장 교환이 오고가는 '낙태'를 엄마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여성들이 아이에게 느끼는 어떤 본능적인 애정을 담아낸다. <음복>에서 강화길 작가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떠올리며 엄마와 자식이 얼마나 밀접하게 달라 붙어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아이가 자신과 같은 여성으로 태어날 때 그 우려와 기대는 한층 강화된다. 여전한 유리천장의 존재와 여성으로서 지닐 수밖에 없을 세상에 대한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태어나 자신과의 연대를 도모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기를, 자신은 이루지 못한 일을 아이는 거뜬히 해내주기를 엄마들은 오늘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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