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검사내전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어릴 때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무척 많은 아이였다. 큰마음 먹고 부모가 지원을 위해 행동에 착수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수시로 뒤바뀌는 꿈들에 엄마는 대놓고 '아주 징글징글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꽤 간절하다고 느꼈으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시도해보지도 않은 채 떠나보낸 꿈들의 모양이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꿈을 꾸던 때가 명확하게 그려지는 어릴 적 장래희망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나는 '법조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명탐정 코난이나 추리 소설을 그 무엇보다도 아끼는 어린아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어른이었다. 내 나름대로 법과 관련된 어린이 만화도 구매해서 읽고, 미래에 어떤 루트를 밟아야 할지 계산하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 엄마는 나의 달콤한 상상에 관해 묻더니 찬물을 확 끼얹었다. 변호사든 뭐든 되려면 로스쿨에 가야 하지만 우리 집으로서는 나를 뒷바라지할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던 때의 나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주저앉아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나는 좁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을 파고 들어가 아주 서럽게 울어댔다. 엄마는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토닥이면서 집에 빚을 져서라도 꼭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이후의 어떤 선택에 있어서도 나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날의 서러움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토록 되고 싶던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지만(그건 내 부모의 탓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 노력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법과 법조인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검사내전>을 읽다 보니 문득 바라기만 하면 뭐든 이러낼 수 있으리라고 과신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서문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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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라는 것이었다. 나사못의 임무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이 맡은 철판을 꼭 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대한민국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검사내전>을 통해 바라본 김웅 검사는 검찰청에 정착하지 못한 채 표류하며 이 책을 써낸 것만 같았다. 세상의 부당함에 꼭 쓴소리를 가해야만 살 수 있고, 검사라는 집단의 보전보다 정의롭고 국가에 실질적으로 이로운 일을 도모하려는 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검찰과 섞이지를 못하고 표류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냉정하고 엄격한 이미지를 탈피해 보려는 다른 책들과 다르게 김웅 검사는 이 책에서 법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순수하고 무지한 독자에게 일격을 가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잘나가다가 갑자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여타 책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는 사회와 제도만을 탓하지 않고 시민들이 스스로 더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고, 또 유난스럽게 법 제도를 수호하며 자신의 권력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이토록 가감 없이 따지고 드는 것이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늘 마음에 묵혀두고 우물쭈물하며 살아오던 내게 깊은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자칫 너무 무겁게 흘러갈 수도 있었을 흐름을 저자는 특유의 기발한 재치로 극복해 냈다. 심각하게 책을 읽어 내려가다가 툭툭 튀어나오는 웃음 포인트에 진심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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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에서 김민섭 작가는 <검사내전>을 읽으며 '어떤 물음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 어떤 눈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고 했다. 글쎄, 삶에 관해 엄청난 양의 물음표를 양산하며 살아왔던 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상대의 기를 내리누를 수 있을 만큼 강렬하고 소신 있는 눈보다 서글프고 무지몽매한 눈으로 세상을 대하며 살아왔다. 물음표는 늘 혼잣말로 그쳤고, 사회와 권력 집단의 변화에 일조하지 못했다. 크고 또렷하게 나만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부족하고 모자라다고만 생각해 왔다. 여기까지 자아 성찰을 하고 보니 대학교 때 매번 내 글에 시비를 걸던 교수님이 떠오른다. 그는 내 글에서 자기 의견이 터무니없이 모자라다고 지적했다. 나는 영혼까지 갈아 넣어 주제에 관한 의견을 써서 제출했는데 교수님은 어디에서도 내 생각을 읽어낼 수 없다고 평했으니 답답해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그런데 졸업을 한 후 당시를 이성적으로 회고할 수 있는 시기가 되고 보니 내가 써낸 건 타인의 의견을 모방한 것일 뿐이라는 그 교수님의 평이 옳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회가 제시하는 큰 틀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고, 괜히 다른 주장을 해서 사람들에게 주목받거나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집단생활이 중요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제 목소리를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서서히 내 삶의, 더 나아가 이 사회의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 타인의 의견에 동조하기보다 제멋대로 주절대 보려고 한다. 물음표가 세상의 한 가운데에 내던져져 마음껏 뒹굴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마련하려고 한다. 소심했던 물음표는 나의 날카롭고 형형한 눈빛과 함께 또 다른 수많은 물음표와 부딪치고 연대하며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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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0 14: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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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1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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