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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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를 하면서 '돈을 벌면 하고 싶은 일'에 관한 리스트를 작성했다. 개중에는 북클럽 문학동네에 가입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북클럽 멤버가 되면 도서 한 권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토록 고대하던 일이었으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길게 나열된 도서 목록을 마주하고서는 결제창으로 좀처럼 넘어가지 못한 채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치 내년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리스트를 훑어보고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중에서도 오은 시인의 <다독임>을 골랐던 것은 난다에서 출판한 박연준 시인의 <소란>에 대한 만족에 기인한 바가 크다. 어쩌면 마침내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내 자리가 주는 어색함으로 인해 누군가의 '다독임'을 갈망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다독임> 속에서 '오은'이라는 사람을 어설프게 이해하고, 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오은'의 '단골'이 되어 "특정 메뉴를 뛰어넘어 그 집의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마음에 담"고, "기꺼이 그 집의 식구가 되"었다. 이런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그러나 더없이 소중한 이야기들을 마음에 새기면서 내가 그 짧은 사이에 잊어버리고, 놓쳐버린 것들을 떠올렸다. 오은 시인이 작은 일상 속에서 자신을 다독이는 동안 남긴 글들로 나도 간신히 무언가를 붙잡고, 또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

"우리는 청소하면 동네가 깨끗해지는 게 보이잖아. 잘한 티가 나는 거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야? 그에 비하면 이 일은 양반이지(p57)."

작품에 기록된 한 환경미화원의 말을 들으면서 '다독임'이란 것도 티가 잘 나지 않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대를 다독이며 힘을 북돋더라도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고, 더러는 힘들 때 그를 내가 다독였다는 사실이 잊히기 때문이다. 다독임은 품이 꽤 많이 들면서도 마음이라는 동네가 환해지는 일에 실제로 보탬이 되기나 한 것인지 좀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주기 때문에 용이성과는 상관없이 사회에서 절실히 요구된다. 사라진 '우체통'과 '공중전화'처럼 평소에는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문득 마주쳤을 때 우리의 마음을 데우고 울컥하게 만든다. 효율과 성과만이 중시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벗어난 이 감정적인 행위는 사람을 사람답게, 사회를 더욱 사회답게 유지해 왔다. 사회가 중요시하는 것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려는 움직임은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로 대변되는 세상에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는 없을 자아의 사소한 변화를 시인은 주목하고 있다. 서류 위에 새겨지는 나의 '그림자'가 아닌 '영혼'의 충만한 경험과 겹겹이 쌓여 기적을 만들어내는 변화들을 시인 오은은 잊지 않고 새겨두었다. 이렇게 작은 것들을 기록하려는 모든 개인 덕분에 겨우 '살 만한' 세상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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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니?'라는 질문에 '응, 잘 살고 있어'라고 서슴없이 대답하는 삶, 나는 오늘도 이런 삶을 꿈꾼다(p122)."

나를 다독이는 시인의 손길을 받다 보니 새삼 왠지 울고 싶어지던 마음이 가셨다.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던 내 자리를 드디어 찾아냈는데, 잘 살고 있지 못한 것만 같다. 쉽사리 극복되지 않을 것만 같은 눈앞의 과제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삶을 잘 살아내지 못하리라는 예감에 휩싸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은 시인이 보여준 쓰는 것에 대한 애정은 내게 또 다른 열망을 품을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나 또한 자꾸 무언가를 읽고 쓰면서 오롯이 나 자신이 되어가고 싶다. 백지를 볼 때마다 느끼는 막연함을 즐기면서 그저 꾸준히 내 안의 무언가를 글로 꺼내놓고 싶다.

<다독임>을 읽다 보면 오은 시인이 시라는 장르와 같은 글을 쓰는 시인들을 얼마나 아끼는지가 드러난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나도 손에 시집 한 권을 쥐고 싶어졌다. 다음 주말에는 혜화동에 있는 '위트 앤 시니컬'에 들려야겠다. 그렇게 시인들에게 힘입어 또 한 번 힘차게 삶을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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