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십대는 감정 과잉과 열망이 엉킨 소란한 시기다. 많은 젊은이에게 슬픔은 죽음과 맞닿은 듯한 슬픔이며, 걱정과 불안이 고약하게 활개를 치는 시기이다. 고래떼 같은 격정이 몰려오거나 침대를 휘감고 사라지는 파도 앞에서 젊은이들은 슬픔의 먹이가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p180)"

박연준 시인의 <소란>은 내가 지나고 있는 청춘의 시기와 꼭 닮아있다. 온갖 감정들에 격하게 반응하느라 소란스러우면서도, 또 가장 나다운 시기로 '밑알'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란>을 읽으면서 집 옥상에 올라가 앉아 선선한 바람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수 아이유의 '꽃갈피'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흥얼거리면서). 6년 정도 살면서 한 번도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옥상을 작년에 이르러서야 올라가 보았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던 풍경과 적당한 햇살을 나는 늘 잊지 못한다. 새로운 용기를 불어 넣어주던 그 순간을 <소란>은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은 봄바람처럼 가벼워서 좋았다. 또, 너무 가볍지만은 않아서 여러 생각에 침잠하게 만들었다. 마음 한구석에 일어나는 조그마한 소란이 어쩐지 싫지만은 않다. 읽으면서 아주 여러 번 누구에게 이 책을 건네 기분 좋은 소란을 일으키면 좋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나의 소란을 닮아 있으면서도, 타인의 그것마저 품으려는 작품을 어느 누구도 마다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당신도 서로의 밤에 침입해 어느 페이지부터랄 것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열렬히 서로를 읽어나간 거겠죠. 내게는 사랑에 대한 첫 독서가 당신이란 책이었고, 행복했고 열렬했어요. 어느 페이지는 다 외워버렸고, 어느 페이지는 찢어 없앴고, 어느 페이지는 슬퍼서 두 번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즐거웠습니다(p33)"

나름대로의 소란스러운 시기를 지나 지금은 어느 정도 침착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다. 미리 두려워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여전히 미리 걱정하며 무척 시끌벅적하게 하루하루를 쌓아간다. '슬픔은 슬픔대로 즐겁다'라는 꼭지에 실린 시인의 말처럼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내지 못해 스스로를 미워하던 때도 있었다. 왜 감정적인 소란스러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는지, 나 자신을 억누르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젠 지나치게 애를 쓰던 단계를 넘어섰다. 또다시 일어난 소란을 웃으며 넘길 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삶 속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소란스럽게 감각할 필요성도 발견해 냈다. 타인의 시선에서 여전히 어리고, 부족하기만 한 시절을 지나고 있지만, 나는 내가 가진 소란을 긍정한다. 언젠가는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내가 다시 한번 되돌아오고 싶을 '이십 대'라는 '소란'을 열렬히 사랑하고 싶다.

서쪽은 기울어가는 것들이 마지막을 기대는 곳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