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사라지지 않는 여름 1~2 - 전2권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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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의 사랑에 관해 다룬 작품이라면, 이전에도 수없이 보았다.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특별한 건 그들의 과거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캐머런 포스트'의 인생을 다루면서 애초에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시도를 통해 동성애가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끌림이며, 타인의 억압에 의해 변경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님을 드러낸다.

사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동성애'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저자는 아이의 성장 과정 속에서 어른들이 맡은 역할에 주목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교육자이자 조력자로 여겨지지만,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이가 가진 성질 중 스스로의 신념에 반하는 종류의 것이 존재하면, 이를 억압하고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종용할 때도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것이 동성애였으나, 이외의 어느 특질이든 보호자의 불만족으로 짓눌리고, 강압적인 변화의 길목에 놓일 수 있다. '캐머런 포스트'의 주변 어른들처럼 자신의 의견만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여기며 어른으로서의 권력을 남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들은 하나님과 종교를 핑계 삼아 자신의 논리를 공고히 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성찰과 개선은 엿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세계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오류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배제되어 있다. 이들은 자신의 무리에 속하지 않는 타인만이 교육의 대상이라고 여긴다.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무결한 어른이 될 수는 없을 테다. 그러니 단호하게 위에서 아래로 가르치려 들기보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약함을 드러내며 위로를 받고, 솔직하게 아이와 상의할 수 있는 태도가 교육자에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세상에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부정한 욕망과 행동으로 인한 고통뿐이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그 고통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p55)"

캐머런을 교육하던 '릭'과 '리디아'는 "동성 매력 장애"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캐머런은 이들을 비롯한 여러 어른들에게서 '정상'적인 상태와 '원래대로' 되돌아오기를 강요받았다. 그녀를 "정상으로 만든다"라는 문장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더욱 충격적인 발언은 동성애의 반대말이 이성애가 아닌 거룩함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을 정상과 비정상의 흑백 논리로 구분 짓는 어른들의 태도가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정상과 원래의 기준은 태초에 누가 설정했을까. 만약 퀴어가 대다수인 공동체에서 태어났다면, 정상과 비정상의 대상은 뒤바뀐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옳을 수 없고, 상황과 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만들어진 신념만이 전부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다수가 지정한 정상성이 진짜로 올바른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수없이 개선하여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할 지점이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온갖 것을 수용할 자세를 지니지 않고, 내가 믿는 정상성만을 지켜내기에는 세상이 이미 너무도 복잡다단해졌다. '동성애'를 비롯한 수많은 변화가 눈앞에 쌓여있고, 나와 다르고 경험해본 적 없는 세계라는 이유로 전부 내칠 수는 없다. 또한, 동성애는 인종 차별만큼이나 내가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문제에 포함되지 말았어야 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박해받고, 죽어나갈 필요도 없었다.

"그 사건은 바로 저였어요. 그냥 저요. 언제나 그렇죠. 제가 이 모습 그대로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p158)"

소설 속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교육기관에서 캐머런과 함께 지내던 '마크'가 했던 말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타인이 품은 혐오의 근원이라는 인식은 아이가 감당하기엔 버거워 보였다. 물론, 죽음 만으로 상대의 미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나이대와 상관없이 모두를 아프게 할 것이다. 마크를 비롯한 '하나님의 약속'에 격리된 아이들 전부 어른의 오만이 아니었다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삶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얄팍한 믿음으로 어른들은 거만해졌고, 아이들을 자기혐오의 세상으로 내몰았다. 이번 생이 처음인 어른들도 항상 무언가를 배우고, 차츰 성장해간다. 아이들을 가르칠 완전한 자격을 가진 이는 없고, 우리는 그저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도모해 나가는 협력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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