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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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정열적이고, 식물의 푸르름이 돋보이는 계절이다. <여름의 겨울>에는 아버지와 그의 분노만 없었다면, 영원히 생동감 넘치는 여름을 만끽하며 살아갔을 아이들이 있다. 패배감에 젖어 약자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일은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뎌내는 것과 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가족 안에는 언제나 겨울만 존재하고, 끝을 알 수가 없다. 오로지 죽음만이 위태로운 관계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세상 밖의 계절과 관계없이 늘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가정은 흔하게 소설의 소재가 된다. 가정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사람이 현실 속에 그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다. 소설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은 대부분 남성에 의해서 행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의 겨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듯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최종 방어선의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여름의 겨울>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어머니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아버지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남편을 극복하지 못할 상대로 여겨 스스로 위기에 대항할 힘을 기르거나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공포에 짓눌려 자신이 속한 가족과 집이라는 공간이 세상의 끝인 것처럼 여기는 작품 속 여성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내가 읽은 작품들에서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묘사하므로, 어머니가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순응하게 되는 과정을 알아내고 싶었다. 어차피 평생을 남편의 그림자에 시달리게 될 테니, 물리적인 폭력을 감내할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집 밖에도 희망은 없으리라는 사실이 그녀들을 묶어두었을까.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강인한 어머니가 될 수는 없었을까. 이 문장들을 적어 내려가면서도 조심스럽다. 나는 그런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으니까, 건방지게 구는 것처럼 보일 것만 같다.

하지만 <여름의 겨울>에서 '나'가 보인 태도를 고려하면, 여성 스스로 피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나의 희망사항이 완전히 그릇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아버지의 폭력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포식자'와 같은 태도를 때때로 내보인다. 게다가 '영 교수님'의 부인인 '야엘'의 존재는 여성 간 협력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여성은 강력한 자아를 인식하고 휘둘리지 않기를 선언함으로써, 더 나아가 여성끼리의 연대를 도모함으로써 폭력이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자신이 연약하지 않고, '포식자'로서의 자아도 겸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여름의 겨울>에서 피해자가 여성이었으므로, 나는 이 문단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모든 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여성을 넘어서서 우리 인류는 전부 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협력을 강화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여름의 겨울>에서 아이들은 가정 폭력의 위험에만 노출되지 않았다. '나'와 동생 '질'은 정신적 고통이 가해졌을 때, 적절한 위안을 얻지 못했다. 또한, 동물들의 시체가 즐비한 방은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영향을 끼쳤다. 가족 간 끊어지기 쉬운 유대는 아이들이 안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돌보기엔 부모가 각자의 문제로 지나치게 바빴다. 패배감에 젖은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분노에 휘둘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부모로서의 자격이 부족해 보인다. 완벽한 사람만이 부모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부모로서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과 안정감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여름의 겨울> 속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어떤 삶을 영위하게 되었을까.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탈피할 수는 없었더라도, 못된 과거에 너무 얽매이는 삶은 아니었기를 바라본다. 제3자로서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한탄스럽다.

나는 먹잇감이나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정말로 살아 있고 싶었다.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존재로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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