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수리 집수리 - 집을 수리하고 삶을 수리하는 건축가 김재관의 집과 사람 이야기
김재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에서 정재은 작가가 누군가에게 부탁해 지은 집에서 살아가는 입장이었다면, 그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 있을 테다. 딱 그 상황에 맞는 집 수리업자의 책이 마침 내게 있었다. 영화 <집 이야기>를 관람한 후 영화사에서 선물 받은 책이다. 세 작품 전부 집이라는 공간에 사람과 삶의 이야기가 새겨진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존재했다. 영화 <집 이야기>에서 집을 수리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영화 리뷰 이벤트에 굳이 해당 책이 선물로 주어졌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 "낡음을 증명함으로써 아파트와의 교환 수단이 되면서 집 수리라는 말도 함께 사라져갔다". 영화 <집 이야기>에는 아버지가 머무는 아주 오래된 집이 나온다. 가족들이 모두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오래도록 한자리에 있는 아버지는 집 그 자체다. 낡음을 유지하는 사람과 낡음을 새것과 교환하지 않으려는 사람(책 <수리수리 집 수리>의 김재관 건축가)은 분명 닮은 구석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익숙함을 애정 하는 그들이 좋았다.

어릴 적에 살던 동네가 빈틈없이 새 아파트와 교환되었다. 같은 동네에 오래 살았던 나도 알지 못하는 길들이 이쪽저쪽 생겼다. 밤중에 불이 빼곡히 켜져 있는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비행 준비를 마친 우주선을 보는 것만 같다. 낮은 벽돌 담장으로 가득하던 동네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고, 내 동네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엇비슷한 주택에 살면서 고만고만하던 친구들도 온데간데없다. 변해버린 동네를 바라보며 내뱉던 짧은 탄식은 어느 날 큰 충격으로 확장되었다. 건물이 세워지기 전 비어있는 땅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또 하나의 추억이 저버리는구나, 나는 이제 되짚으며 돌아올 곳이 없구나, 하면서 바라보던 순간의 상실감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하리라. 그래서 과거를 함부로 내다 버리지 않는 두 작품을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다.

책 <수리수리 집수리>를 읽는 건 내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도배공으로 오랫동안 일을 하셨다. 이 책에서 김재관 건축가가 집을 수리하면서 만난 인부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도배공에 대한 것도 딱 한 번 초반에 등장한다. 여러 번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반갑고 아버지가 일하던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집을 이사할 때마다 벽지에 풀을 바르는 아버지는 여러 번 보았지만, 일터에 간 기억은 거의 없다. 심부름으로 찾아가도, 주변을 맴돌면서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과묵한 편이어서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별로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책을 읽으며 아버지가 일하고, 또 다른 업자와 협력하는 모습을 얼추 그려볼 수 있었다. 영화나 책을 통해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를 헤아리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김재관 건축가의 묘사처럼 인부들은 대개의 경우 배움이 짧다. 또 경력이 오래된 탓에 실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컨트롤하기가 어렵다. 일만 잘하면, 현장에서 이런 단점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려서부터 한 우물만 판 덕에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고, 현장의 다른 업무도 조금씩은 할 줄 안다. 우리 아버지도 집의 간단한 수리나 보수 일은 직접 해결하셨다. 그래서 어릴 때는 집에 문제가 터졌을 때, 친구들이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아저씨'를 부른다고 해서 당황한 적도 있다. 갑작스러운 고장도 상관없고, 적지 않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나는 나이가 좀 들어서야 알아차렸다.

<수리수리 집수리>를 통해 집은 사람의 역사가 담긴다는 말을 절감했다. '사람'에는 집에 거주하는 사람뿐 아니라, 김재관 건축가와 같은 집 수리업자와 인부들, 근처 주민들을 포함한다. 이들은 집에 머무르고, 매만지면서, 혹은 공간을 두고 싸움을 벌이면서 각자만의 역사를 기록해 두었다. 나는 지금 사는 이곳에서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집이 가진 과거와 또 전혀 다른 모습의 미래를 즐겁게 상상해본다.

 

집수리에서 기존의 것을 유지한다는 것은 ‘새로운 쓸모‘를 찾는 실용적 행위이며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문법적 해결이기도 하다. 단순히 미학적 필요에 따라 낡은 것과 새것의 물성을 대비시키려는 건축적 수법과 다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