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리나
닉 드르나소 지음, 박산호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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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출판사 sns에서 <사브리나>를 읽고 박찬욱 감독 뺨치는 훌륭한 리뷰를 남겨줄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그를 넘어설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책리뷰를 남기기 시작한 지 어언 6개월, 이건 꼭 뽑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책을 읽기도 전에 박찬욱 감독과 이동진 평론가의 평을 읽고, 전의를 상실했다. 설령 <사브리나>가 허술한 작품이었더라도, 그들의 소개글은 작품의 황금 띠지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단 몇 줄만으로 책을 요약해내고, 특징을 드러내며, 예비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아, 난 이들에 비하면 작품에 먹칠이나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슬픈 예감이 든다. 이렇게 좋은 평이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사브리나>라는 작품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 작가의 이름이 여타 작품과 달리 맨 뒤에 새겨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거기서부터 자부심이 느껴졌다. 맨 앞에 작가에 대한 소개를 담거나, 뒤표지에 본문의 문장을 몇 줄 적어 넣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감하게 덜어내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독자는 <사브리나>라는 작품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책 <사브리나>는 한 인물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남겨진 사람들은 씻을 수 없는 슬픔을 떠안게 된다. 이미 삶을 버텨낼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세상은 여러 방식으로 고통을 가하고, 2차 피해를 양산해낸다. 기이하게도, 처음에는 루머생성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싶었는데, 점점 내가 믿는 진실을 의심하게 되었다. 작품 자체에서 범죄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지 않아 의혹은 증폭되다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채 마무리를 짓는다. 결국 진실이 명확하게 무엇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작가는 네모난 프레임 안에 캐릭터의 표정과 대사만으로 작품을 이끌어 나가서, 독자가 상황 판단을 위해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적은 편이다. 캐릭터들이 극적인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있고, 증거물도 간략하게만 그려져 있다. 범인이 거론되었으나, 여러 루머나 기사와 겹쳐지면서 나는 사건의 진실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상황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했음에도, 피해자를 특정하고, 그들이 겪는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건 독자로서의 개인적인 편집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루머로 인해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괴로움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크게 와닿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도 수년에 걸쳐 악성 루머로 적지 않은 사람들을 잃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의적인 거짓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이 진짜라고 주장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게 많다고 우겼고, 적지 않은 사람이 거기에 동조했다. 교묘하게 그럴듯한 말을 섞어 쓰는 탓이다. 실제로도 우리가 정부나 연예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미미하므로, '음모론'이라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일단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이라도 하게 된다. 호기심을 억누르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이렇게 각종 음모론, 루머, 기사들이 퍼져 나가면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뒷일은 고려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두 번 죽이는 일에 가담한다.

우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악성 루머를 생산해내는 이유가 단순히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무척 절망스럽다. 결국 전부 타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린다.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이 타인에게 끼친 피해는 간과할 수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거짓 정보를 생산해낸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지하지 못했고, 세상이 이에 쉽게 현혹되어 그들의 잘못을 용인해주었다. 물론 찌라시가 돌고, 악성 댓글이 달려서 사람 하나가 목숨을 잃으면, 누구든 소수의 잘못을 묵인한 적이 없노라고 발뺌할 것이다. 최근의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잘못인지 지적되기보다 특정 한 사람이 또 다른 단두대에 올랐다. 거기에서 자신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는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

<사브리나>는 우리가 무감하게 만들어내고, 믿어버리는 거짓에 대한 경고를 보낸다. 또한 방관자로만 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는 때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악성 댓글을 보고도 지나치는 것으로, 때로는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고 동의하는 것으로, 온라인상에 유포된 동영상을 호기심이라는 이유를 들이밀며 시청한 것으로, 적지 않은 범죄에 가담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사브리나>에서 거론되지 않은 진짜 범죄자는 우리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실에 대한 궁금증보다, 자각하지 못한 채 저질렀을 잘못들에 대한 뼈저린 깨달음만이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피해자는 차츰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 새겨지고, 드문드문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외에 또 다른 수많은 피해자들이 곳곳에서 목격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남겨진 우리가 거짓을 보지 않은 척 대충 넘어가려는 안일한 생활 태도를 견지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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