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의 마음시리즈 1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충실한 마음>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충실하게 인생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묘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느 면에서 이건 맞는 이야기지만, '델핀 드 비강'이 주력하고 있는 바는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모습이다. 저자는 '테오'와 '마티스'라는 두 아이를 작품 속에서 내세웠다. '테오'는 독자들에게 연약한 부모 밑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가 사회의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밀하게 그려냈다. 아이는 매주 금요일마다 "가교도 안내자도 없이" "서로 교차하는 지대 하나 없는 완전한 두 세계 사이를 오가"야만 했다. 또한 이혼하기 전에 서로를 헐뜯던 부부의 모습을 아이가 온 가족이 모여있던 "유일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테오'의 가정에서는 '이혼'이 문제의 본질인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을 추구하면서,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사람들도 존재하니까. '테오'의 엄마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이었고, 사회에서 내쳐진 아빠는 부모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한창 민감한 시기의 12살 반짜리 아이를 제대로 케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미 본인들의 문제만으로도 삶을 버텨내기가 무척 벅찼던 것이다. 특히 감정을 앞세우는 엄마는 '테오'에게 자주 상처를 주었다. 본인이 가진 남편에 대한 증오로 아이 또한 아빠와 보낸 시간을 입에 담지 못하고, 아빠의 존재를 부정해야만 했다. 이 과정 속에서 '테오'는 "자신을 드러내지 말 것. 경계선으로 나뉜 두 진영에서 침묵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최고의 방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라는 믿음은 아이가 다른 어른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구조 요청을 하지 못하게 막아선다. 역자는 아이가 부모에 대한 '충실한 마음'때문에 선생님에게 힘듦을 고백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테오'가 감정을 숨기며 사는 게 몸에 배어있었던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린아이일 뿐인 '테오'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저 모든 게 버거울 뿐이다. 아이는 그저 자신을 도와주려는 선생님에게 "우리가 있는 곳이 막다른 길임이 명백하다는 시선,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무엇을 시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듯한 눈빛"을 던질 뿐이다. '테오'가 다니는 학교 교장은 '엘렌' 선생님에게 너무 깊숙이 문제를 파고들지 말라, 고 조언했다. 나는 오히려 '학교'라는 더 큰 사회의 공권력이 한 '가정'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파고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이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없을 때, 사회가 나서서 상황을 조율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코올로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테오'와 같은 아이가 생겨나고야 말기 때문이다.

'테오'의 친구인 '마티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부모, 특히 엄마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엿볼 수 있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특별한 목소리의 음색이 있고, 마티스를 바라보는 엄마만의 시선이 있다". '마티스'는 엄마의 감정에 쉽게 전염되고, 엄마가 우울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자책한다.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티스'에게서 엄마, 혹은 가족이라는 집단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에, '테오'가 가진 비극을 독자는 더 강렬하게 실감한다. '마티스'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테오'의 가정은 "춤을 추는 불길"이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테오'는 "엄마의 품으로 숨어들고 싶"었고, "낮은 목소리로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싶었으나 끝끝내 그러지 못했다.

<충실한 마음>이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장면들이 '세실'과 '엘렌'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연출된다. 그들은 비슷한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아픔은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어릴 때 무력하게 학대를 견뎠던 기억으로 '세실'과 '엘렌'은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어른들이 되었다. 그러나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서 그들은 갑작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더 이상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 노선을 선택한다. 내면의 목소리는 더 이상 그들을 "안심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목소리는 이제 의견을 내세운다". 이는 '세실'과 '엘렌'이 타인의 지시가 아니라 자아에 충실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읽힌다. '세실'은 남편에게서 벗어나려고 짐을 싸는 것으로, '엘렌'은 자신과 비슷한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겪는 '테오'를 보호하러 나서는 것으로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12살 반짜리인 '테오'에게 있어 가족과 가정은 너무도 거대한 존재였다. 이를 바꾸기를 원하더라도,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었으며,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충실한 마음>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연약한 어린아이들에게 사회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적절한 때에 제대로 된 관심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충실한 마음>은 그들의 삶에 사회가 힘을 발휘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엘렌' 선생님처럼 삶의 고통을 털어놓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자세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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