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정의 - 문학으로 읽는 법, 법으로 바라본 문학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안경환.김성곤 지음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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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한 해 '법'과 '정의'에 대해 성찰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판결과 정의>(창비 출판), <법의 이유>(arte 출판) 등에 이어 영화나 소설을 통해 '법'과 '정의', 그리고 현 사회를 돌아보려는 <폭력과 정의>(비채 출판)가 등장했다. 믿었던 국가에 배신당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만큼 깨어있는 인식을 가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증거일 테다. '법'이나 '정의'에 대해 살펴보는 일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고,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법'과 '정의'라는 단어는 접근하기 전부터 다가서기 어렵다는 인식을 준다. 그런 독자들을 위해 <폭력과 정의>가 출판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메이즈 러너>, <캡틴 아메리카>, <괴물>, <왕자와 거지> 등의 작품을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우면서도, 심도 있게 본래 가지고 있던 법이나 정의, 사회에 대한 생각들이 옳은지 파헤친다. 사실 <폭력과 정의>라는 제목만 들으면 어둡고 어려운 책일 거라고 여겨지기 쉬울 듯하다. 또한 "문학으로 읽는 법, 법으로 바라본 문학"이라는 부제목이 붙었으나, 이 책에는 영화를 소재로 삼은 경우가 훨씬 많다. 게다가 책은 법에 관해서만 다루고 있지 않다. '안경환', '김성곤' 두 작가의 연륜으로 과거부터 이제까지의 사회를 조망하며, 우리가 가진 편견이 과연 절대적 진리인지에 대해서도 묻고 있다. 그러니까 책의 표지만을 보고 <폭력과 정의>를 판단할 수는 없다. 표지에 쓰인 문구들보다 훨씬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법의 이면'에서는 법 제도와 변호사라는 직업에 관해 살펴보고 있고, 2부 '정의와 편견'은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되는 '정의'와 우리가 가진 '편견', '차별'등의 일상적인 폭력에 관해 논의한다. 3부 '사회와 사람'이라는 장은 하나의 단어로 추출하기가 어렵다. 다만 특징이라고 하자면, 남북한 분단 상황에 대해 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1부에서 3부에 이르기까지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평소 가지고 있던 인식의 틀을 깨주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법이라는 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완전한 구원이 되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한다. 때로 "구원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양극단의 싸움이 아닌, 시스템을 벗어나 외부로 나가는 제3의 길에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화 <백설공주>에 담긴 여성에 대한 편견을 지적한 부분이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를 통해서 나는 이미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디즈니 동화들이 실은 여성차별적이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설공주>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거울의 목소리가 언제나 남자 목소리로 되어 있다는 점"이나 왕자가 난쟁이들에게 했던 대사-"이 여인을 나에게 주면 내 소중한 소유물로 삼겠소"-도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암시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생소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이전에 왜 꼭 공주들은 왕자가 구해주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냐는 항의는 들어본 적이 있고, 나도 무척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동화를 읽는 당시만 해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지식을 얼마나 무력하게 수용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거울의 목소리가 남성이었다는 점과 왕자가 '소유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은 기억조차 나지 않아서 <폭력과 정의>를 읽는 내내 해당 부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외에도 <폭력과 정의>에는 여러 장에서 시스템의 틀 안에서 어떠한 이의 제기도 없이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더 나아가 아무리 힘없는 약자라도 나라의 최고 법원으로 하여금 법을 바꾸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진지한 참여와 토론을 통해 법이나 사회의 오류가 극복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폭력과 정의>를 통해서 나는 이전에 관람했던 영화나 읽었던 소설들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지 않고, 경계할 수 있게 되었다. 각 장마다 내용이 길지 않으므로,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쉽게 완독이 가능하다는 장점 또한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절대적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허구적이며, 또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즉 중요한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잘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 P165

기드온이 피리를 뿜어내듯 분 나팔 소리에 법이, 정의가, 판사의 양심이 그리고 인간 존엄을 표방하는 헌법정신이 장단을 맞추었던 것이다. 여기에 법제도의 위력이 있다. - P134

이 재판 결과는 인권유린과 인간성의 희생 아래 경제성장 일변도로 달음박질해온 한국 현대사에 대한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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