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죽음
에밀 졸라 지음, 이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일단 <결혼, 죽음>의 편집부터 살펴보자면, 책 표지와 작가 소개에 쓰인 글씨체를 바꾸고 싶다. 아마 바른 고딕체인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책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없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책이 엉성해 보이는 인상을 준다. 결혼과 죽음이라는 소재를 잘 드러낸 표지 일러스트는 인상적이다. 다만, 책의 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작가 '에밀 졸라'와 <결혼, 죽음>에 관한 소개 글을 짧게 껴 넣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에밀 졸라'의 <결혼, 죽음>은 여러 단편들을 '결혼'과 '죽음'이라는 주제 아래에 묶어놓은 것이다. 서로를 이해할 시간조차도 부여받지 못한 채 결혼에 뛰어들어야 했던 19세기에 쓰였다. 1장 결혼과 2장 죽음에서는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등의 각 계급에서 결혼과 죽음의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루었다. 그리고 마지막 3장 '어떤 사랑'에서는 계급은 명시하지 않은 채 한 연인의 결혼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계급 간에 드러나는 뚜렷한 차이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1장 결혼

귀족에게 결혼은 지위 상승을 위한 일종의 수단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적당히만 알아도 된다. 신부가 지참금으로 얼마를 들고 오는지가 이 결혼에서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알지 못한 채 결혼 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한 집안에서 떨어져 지내고, 바깥으로 나돈다.

부르주아의 모습 또한 귀족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들에게 결혼은 일종의 "비즈니스"다. 일단 여자를 고르기 전에 "재산 계산"부터 들어간다. 귀족들처럼 부르주아들에게 결혼은 자신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항일 뿐이다.

상인도 상대의 돈을 보고 결혼하는 것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결혼생활은 상인이라는 직업에 걸맞게 이뤄진다. 이불보를 두 번 빨아서 세탁비를 낭비하지 않도록 늘 동침하는 식이다.

서민은 위의 사람들과 좀 달랐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돈이 없으니 갖은 애를 써야 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도 돈 때문에 녹록지 않았다.

1장을 다시금 떠올려 보니 죄다 돈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본주의의 나라에서 드러나는 고질적인 문제다. 그놈의 돈. 사실 결혼에 있어서 상대의 재력을 우선순위로 두는 사람은 현대에도 존재하므로, 비단 19세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에밀 졸라'가 이 장에서 묘사한 서민들의 삶을 본다면, 상대가 돈이 많기를 바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다. 또한 돈 이외에 각 계급의 사람들이 계급이라는 틀에 갇혀 자신과 엇비슷한 상황에 놓인, 혹은 물질적으로 자신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과만 결혼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이것도 현대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은 계급이라는 울타리가 쳐져 있지 않지만, 사람들은 암암리에 만들어진 신분적 제약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니까 <결혼, 죽음>은 19세기의 소설이 아니라, 현대 소설이기도 하다.

'에밀 졸라'의 작품에서 계급에 따라 보이던 모습이 전부 옳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귀족이지만 돈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을 좇던 이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계급마다의 보편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고, 더군다나 실제로 그들의 속사정이 어땠는지는 본인들만이 알 것이다.

2장 죽음

2장에서 귀족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죽어가는 데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는다. 서로 이미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에, 죽어가는 남편은 하인들이 돌본다. 죽음 직전에서야 그들은 서로의 곁을 지킬뿐이다. 이어지는 장례 행렬에도 자식들만 따라나서고, 그녀는 집에 머무른다. 장례식에서 오고 가는 건 그럴듯한 빈말들뿐이다.

부르주아 과부의 죽음에는 유산을 놓고 싸우는 자식들이 등장한다. 아들들은 이미 돈을 무진장 날려먹은 과거가 있는데, 과부가 죽고 나서도 인내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유산을 나눠 가지고는 그대로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흩어진다.

상인의 죽음은 씁쓸한 맛이 있었다. 자신의 아내가 죽어가는 데도 간호를 하지 못하고, 장사를 지속해 나간다. 그녀를 간호하는 건 엉성하기 짝이 없는 하인뿐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게를 지켜야만 했다. 아내도 그러기를 바라고, 병상에서도 가게 일을 돕는다. 아내가 세상을 뜨고 난 후에도 남편이 앉아서 걱정하는 건 주중에 가게를 닫았다는 사실이었다.

서민 아들의 죽음은 비참했다.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이들은 아들이 폐병으로 죽어가는 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빈민 구제' 시스템은 아들이 죽고 나서야 그들에게 도움을 건넨다. 아들에게 제대로 된 약 하나 지어줄 수 없던 서민 부부는 무력하게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농부의 죽음은 상인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다. 밭을 돌보는 일은 장사와 같아서 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죽어가면서도 자식들이 자신을 돌볼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얼른 밭으로 나가서 일을 하라고 말한다.

죽음의 장에서 느꼈던 바는 누군가의 죽음과 관계없이,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은 지속된다는 점이었다. 상인 남편과 농부의 자식들은 가게와 밭을 계속 운영해 나가야 하고, 농부는 아들이 죽은 후에 빈민 구제 지원금으로 술을 마신 후 거나하게 취한다. 귀족은 남편이 죽은 후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죽음 후에도 삶은 계속되리라,는 흔한 어구는 계급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통용된다.

3장에서 다루어지는 '어떤 사랑'은 '결혼'과 '죽음'이 계급마다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가,에 관해 다루던 이전 장들과는 차이가 있다. 3장은 욕망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연인이 자신들의 욕망으로 인해 결국은 죽음을 자초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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