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구민 한 책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부상으로 도서상품권을 얻었다. 받자마자 내가 책덕임을 증명하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갔다. 처음으로 방문한 동네 책방에서 여러 책들을 이리저리 뒤집었다. 마땅히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 없어서 그냥 갈까, 했는데, 우연히 들었던 책 바로 밑에서 <사하맨션>을 발견했다. 책이 뒤죽박죽 정리되어 있어서 다른 책 밑에 이 책이 깔려 있었다. 비주류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조남주' 작가의 소설이라는 점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표지가 좀 더 남루했다면 좋았겠다. 글로우 효과도 넣지 않고, 양장 커버가 아닌 페이퍼북으로 바꾸고 싶다. 절망적인 '사하맨션'의 느낌이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이 뭐랄까, 나 좀 사달라고 홍보문구로 가득하지가 않다. 책 내부에도 평론은 없고, 추천사도 짧게 적혀 있을 뿐이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스타덤에 오른 '조남주' 작가가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된 듯한 느낌이다. 작가 이외에 아무것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에 쏟아진 몇몇 혹평을 보았는데, 나는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절망적이고 암울한 소설인 줄로만 알았는데, 읽다 보니 이건 추리소설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복선이 마지막 장에 가서야 발견된다. 소름이 오소소소 돋아났다. 이번에 영화화가 되어 큰 사랑을 받은 <82년생 김지영>처럼 어쩌면 이 책도 영화로 제작될지 모르겠다. 그만큼 생생하다. 눈앞에 장면들이 그려지고,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었다.<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도 그랬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독특한 상황-여러 여성들이 빙의되는 '김지영' 씨, 기존의 국가와는 형태가 다른 기업이 운영하는 '도시국가'-을 설정하는데, 그게 또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지도 않다. 서로 다른 성격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지만 전부 여성들이 살면서 마주치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고, '도시국가'는 몇몇 지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모습을 드러낸다. 온전치 못한 주민으로 살아가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도맡으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사하맨션' 사람들은 그리 멀지 않은 얘기이기도 하다.
'주민'의 타이틀을 얻지 못한 이들은 할 수 있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 일용직을 전전하며, 늘 가난과 맞서야 하는 건 물론이고, 언제 국가에 의해 그들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질지도 예측할 수 없다. 실체가 불분명한 '총리단'이라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돌아간다. 한 쪽 모서리만 떼어주고 자신들을 못살게 구는 나라에 항의라도 하면 좋겠는데, 가진 게 없어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이들은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들의 삶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주민'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즉 가진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넘쳐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뿐이다. 이런 무력하고 한숨만 나오는 '사하맨션' 사람들의 인생이 현 한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대부분의 삶은 그래도 이렇게 극적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지만. 영 딴 판의 장소라고 말하기엔 소설에서 불쑥불쑥 내가 살면서 마주친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모퉁이를 돌아 튀어나온다.
"타운에서는 아기가 버려지지 않는다. 타운은 생명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누구라도, 심지어 사하라도 아무 조건과 부담 없이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며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다(243p)",라는 대목에서 우리의 현재와 다른 면을 가끔은 목격하기도 했다.
소설의 말미에 이야기가 살짝 급커브를 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힌트는 이 소설에 등장한 '영감'의 대사 중 일부이다.
"거기 없었어. 따라가도 없었어. 그러니까 항상 진짜가 어디 있을지 생각해야 해."(p329)
사실 '진실의 추구'라는 주제는 여러 소설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 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주제에 도달하기까지 작가가 내놓은 이야기가 나름의 스릴을 가지고 있다.
소설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까 '국정농단 사태'가 문득 떠오른다. 모래알 같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뭉쳐졌고, '진실' 하나만을 바라며 달려들었다. 세상이 그 이후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세대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변혁을 위해 항상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소설을 완독하고 나면, 지금 내가 한 이 말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