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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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에게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자애였다.˝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의 장편소설 <아일린>은 ‘아일린‘이라는 젊은 여성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아일린‘이 나이가 들어서 1964년 24살의 자신을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끝없는 아버지의 폭언으로 자신을 혐오하는 일밖에 알지 못하는 여성이었다. 경찰관으로서 동네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가 집에서는 딸에게 수치심을 안기고, 늘상 술에 취해 제정신인 때가 거의 없다. ˝아버지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다 잘못이라고 확신했고 내게도 그렇게 말했다˝, 이 문장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아버지는 ‘아일린‘이 자기혐오로 점철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일린‘은 ˝아버지가 변하기를, 내게 잘해주기를, 나를 들들 볶은 지난 오륙 년에 대해 사과하기를 바˝란다.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언니는 결혼해 집에 들어오지도 않으니, 그녀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아버지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일린‘이 아버지에게 기대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아버지와 지긋지긋한 동네 ‘X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던 ‘아일린‘이 결국엔 그곳을 떠나기까지 일주일간의 여정이 책에 담겼다. ‘아일린‘이 ˝탈출을 갈망하면서도 매번 게으름과 두려움에 눌려˝ 지내다가, 늘 꿈꿔오던 뉴욕으로 가게 되는 이유는 급작스러운 사건의 발생때문이었다. 이 글에서는 그 사건을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소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당황스러운 사건을 목격할 기회를 다른 이들에게도 주고 싶다.


˝리베카가 곁에 있으니 아버지의 자비를 구걸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울부짖을 수 있지만
날 아프게 할 수는 없을 거다. 난 어쨌거나 사랑받고 있다˝.

소설 <아일린>에는 자기연민, 자기혐오, 그리고 인생을 향한 무력함 등이 가득하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끊이지 않는 소설 속 세계에서 그녀는 ‘리베카‘라는 직장 동료를 만나게 된다. ‘리베카‘를 통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 거라고 기대하는 ‘아일린‘을 보며 나로서도 결말에 대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노인이 된 ‘아일린‘이 깨달은 거라고는 혼자로 지내는게 진정으로 편하다는 것 뿐이었다. 외롭고 부당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일린‘에게 더 큰 보상이 주어지길 바랬던 나는 실망했다. 한편으로는 그게 또 인생이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린> 뿐만이 아니라 여러 소설을 읽고 나면 모든 인생이 마치 동화처럼 불행함의 끝에 왕국과 왕자를 얻게 되는 건 아니라는 데 대한 씁쓸함이 남는다. 가상의 세계를 인지할만 한 판단력을 가질 나이가 되었지만, 소설 속의 사람들만큼은 현실과 달라주길 바라는 나도 모르게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을 탓하는 걸 그만두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던 날의 다행스러움은 씁쓸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소설 <아일린>은 자기혐오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감정 묘사를 재치있게 표현해냈다.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는 자신의 존재가치에 어울리지 않게 스스로의 몸뚱아리가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뭔지 정말 잘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아무 생각없이 던진 말들에 한 여자아이의 인생이 짓밟혔다는 데 대해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아버지가 보기에 내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딸의 의무가 아닌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다. 나만의 의지가 있다는 증거는 최고의 배반으로 간주되었다.

이 문장에서는 딸, 즉 아일린의 시점만 그려졌지만, 소설 <아일린>을 보면 부모에게 휘둘린 또 하나의 피해자 남자 아이가 등장한다. 이건 ‘아일린‘이라는 여성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사라지다‘라는 단어에 두 가지 의미가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그녀의 자아가 사라졌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녀가 그런 아버지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렇게 ‘아일린‘처럼 또 하나의 남자 아이처럼 가부장적인 부모 때문에 사라져가는 아이들이 있다고 소설은 경고를 보낸다. 진짜로 들었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 왔다고 소설을 이용해 비판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어떤 것이든 도전해 볼 수 있기를, 자신만의 의지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주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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