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연의 로스트 타임 - 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이규연 지음 / 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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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을 홀로 걷는다."

 

저자인 이규연 국장은 '탐사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이 가진 세상이 뒤집히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과, 때로는 진실을 숨기고자 하는 정부와 맞서 싸우며 일해야 하기에, 교도소 담장에서 아슬아슬하게 걷다가 언제 안으로 굴러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항상 놓여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규연 국장은 외롭고, 위태로운 '탐사 저널리스트'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으며, 근 30년을 언론인으로 살아왔다. 지난 30년간의 방대한 역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30년간 탐사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마주한 사건의 기록이자 치열한 반성이다.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30여 건의 사건과 그만큼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작은 현대사'로 봐도 무방하다. 세상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면을 담으려 노력했다(13p)"라는 프롤로그만 보더라도, 그의 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지난 <따뜻한 냉정>이라는 '박주경' 앵커의 에세이를 읽었을 때도 느낀 바이지만, 언론인들의 글을 읽는 게 흥미로운 것은 여러 시사 이슈가 다뤄지기 때문이다. 이전에 읽었던 작품도 사회상을 읽어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지만, 나는 <이규연의 로스트타임>을 더 인상 깊게 읽었다. 어떤 사건들이 있었다는 걸 일깨워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규연 국장과 여러 기자들, '스포트라이트'팀 등은 집요하게 그것을 파고들었다. '탐사 보도'의 특성상 사건 하나를 표면적으로만 읽어서는 안 되고, 심층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는 일이 중요한 탓이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언론인 생활을 굉장히 오래 했기에 시간적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사건을 파악하는 일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국정 농단 사건'이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과거의 일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해,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식이다.

가끔은 책을 읽으면서 이 분도 그저 사람들의 공감과 흥미를 이끌어낼 만한 소재를 좇는 기자일 뿐이구나,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앞으로 태풍으로 태풍으로 발전할 수 있는, 지금의 날갯짓은 과연 무엇일까(58p)" 같은 대사들은 기자로서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피해자들의 시선에서 글을 읽을 때는 자신의 고통이 가십거리로 치환된다는 것이 가슴 아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끝까지 사건을 파내어 이슈로 떠올려 준 덕분에 이목을 끌고, 그 덕분에 사건이 해결되는 때도 있으니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규연의 로스트타임>을 읽으면서 지난 1일에 '몸과 마음의 양식당'에서 진행된 북토크를 떠올렸다. 이규연 국장이 진행하는 강연에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PD, 작가, 기자분들이 참석하셨다. 그날 강연을 들으면서 한국의 '스포트라이트'팀이 보이는 열정과 그들의 노고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책도, 방송도 '이규연'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 속에 진실을 밝히고자 동분서주하는 얼마나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담겼을까. 책에서도 더 많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이름이 담겨있다. 그들의 이름에 주목하기 위해 나도 나름의 노력을 했다.

책을 덮은 후 우리가 때로는 분노에 차서 원망할 사람이 필요해 '기레기'라는 이름으로 짓밟는 그 이름들을 떠올려 보았다. 80년대 한국의 민주주의 격동의 시기에, 혹은 내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국정 농단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들에 그들이 무슨 명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실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점은 분명히 알아두어야겠다.

<이규연의 로스트타임>을 읽으면서 기자들의 본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사건을 낱낱이 드러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제보자들을 보며, 나라면 저 상황에서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당연하게 해본다. 검찰의 부정적인 면을 타파하기 위해 나서고 있는 '임정은 검사'의 말은 이런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긴 한데, 함께 행동해주지 않으면 목격자가 되어주지 않으면, 적어도 사건이 됐을 때 목격자가 되어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혼자 죽어요.(43p)"

 

기자들에게 너희들의 본분을 다하라, 고 질책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내 곁에 놓인 피해자를 두둔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회의 밑바닥을 보면서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로 눈 감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기자들의 의무를 논하는 것도 좋지만, 주변 사람들을 억울한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막는 일에 우리가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훗날에 당신은 그때, 그 현장에서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230p)"

이규연 국장이 기자로서, 탐사 저널리스트로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말이다. 이 구절은 비단 기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할 때 그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모두에게 외치는 말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파헤친 진실의 구덩이들을 보니, 내가 잊어버린 것도 아예 모르던 사실들도 존재했다. 사건들을 조사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기자와 같은 역할은 내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저런 질문을 받았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의 피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겪어야만 했던 고통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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