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회고록이다.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TED 강연 <부적응자로 사는 삶의 아름다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책 <숨을 참던 나날>에는 '리디아'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이 담겨있다. 책에는 그녀가 느꼈던 모든 것들이 거의 가감 없이 적혀 있다. '거의'라는 단어를 굳이 집어넣은 것은 작가가 책에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제외한 내용이 존재한다, 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욕을 남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가 이전에 저질렀던 범법행위들, 개인적으로 가진 아픔들까지 전부 만나볼 수 있다. 이렇게까지 모든 걸 털어내도 되는 거야?라는 걱정이 책을 읽는 내내 수도 없이 들었다. 저자가 이렇게까지 쏟아낸 목적이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난다. 마지막 장을 읽고 정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맞다, 나도 안다. 내가 엮어놓은 인생 이야기가 때로 얼마나 분노로 가득하고 자기 파괴적이고 지저분하고 심지어 망상같이 읽히는지. 그렇지만 아름다운 것들. 우아한 것들. 희망찬 것들은 때때로 어두운 곳에서 생겨난다. 게다가, 나 같은 여자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내 목적이니까(410p)".
그렇다. 그녀는 '숨을 참던 날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을 찾고, 삶의 기쁨을 알게 된 과정을 세세하게 서술하며, 상처 입은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과거 그녀의 행적을 보고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이 책을 읽고 뭔가 깨우침을 얻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경외심에 이 부분만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회고록에서 보여준 자기 파괴의 원인은 부모였다. "우리 집의 모든 방에서 아버지의 무거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48p)", "아버지의 분노, 그의 존재가 마음대로 내 목소리와 손에, 내 살결에 침입했다(71p)". 두 구절만 보더라도, '리디아'가 아버지에게서 얼마나 억압받았고, 그것을 떨쳐내고 싶어 했는지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분노하고, 딸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려던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일에 치이며 살았고, 알코올 중독으로 허덕이며 자식들을 아버지에게서 구해내지 못했다. '리디아'와 그녀가 신처럼 존경하던 언니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우리가 웃은 웃음은, 마침내 자신의 뿌리에서 해방된 여자들의 웃음이었다(396p)".
가장 안정감을 느끼며 지내야 할 가족이라는 둥지에서 떠나갈 생각만 하던 '리디아'는 놀랍게도 "당신은 당신만의 가족을 꾸려야 한다(408p)"고 설파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대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술과 마약을 즐기며 살던 '리디아'는 현재의 남편과 아들을 만나 평생 모르고 살 줄 알았던 인생의 희열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 이 두 사람, 아이와 남편과 함께 있자니. 숨쉬기도 벅차다. 전에는 몰랐다. 이것은 가족이다. 나의 가족이다(380p)."
좀 뻔한 말이면서도, 내 마음을 건드렸던 건 '리디아'가 한 말-어머니와 아버지, 자식으로 이루어진 이성애적 삼위일체는 그저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이었다. 꼭 어머니, 아버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꾸릴 필요 없이, 마음이 맞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가족을 이루어내라,는 소리는 생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사람 정말 뭘 좀 아는 사람이잖아?'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진짜를 가려낼 줄 아는 어른을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가족들 이외에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를 향해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277p)". 그녀도 인정하는 점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 외에 무엇이 존재했거나 존재하든, 글쓰기가 지금 내 옆에 있다(283p)". 이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글쓰기'도 그녀를 살려 놓았다.
일명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잘 알려진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영화 판권을 구입해 제작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책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은,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배우가 아니라면, 이 책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겠다는 것이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보여주던 그 매혹적인 우울함을 떠올리면 작품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국내에도 개봉하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개봉하게 된다면 보게 될 것 같다. 그만큼 그녀에 대한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어지던 슬픔을 견딘 사람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 자신과 같은 이들을 붙잡아주고자 한다. 그러니 당신이 가진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 주저 없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안으로 들어오기를.이 물이 당신을 잡아줄 것이다.
당신이 인생을 제대로 조져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모두를 관통해 흐르는 거대한 슬픔의 강이 당신에게도 닿은 적 있다면, 이 책을 당신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