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
우종학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며, 거대 블랙홀과 은하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우선 나는 엄청난 과학 무지렁이라는 점을 밝혀야겠다. 소위 말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1학년때 공통으로 배운 과학 과목이 마지막이었다. 이후에도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과학계에서 밝혀내는 사실들에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블랙홀 강의>를 읽으면서 자꾸만 개념들을 잊어버려 몇 번 앞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어야만 했다. '음, 그렇구나!' 하며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는데, 후에 '그게 뭐였더라?'하면서 아무리 애써도 떠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다보니까 뒤로 갈수록 '블랙홀'에 관련한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차츰 자리를 잡아나갔다. 그러니까 "과학이 어렵다며 지레 겁을 먹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블랙홀이 주는 풍성함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p6)"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와 관련이 없는 지식이니 알 필요가 없다며 외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블랙홀'을 나의 우주에 채워넣기로 했다. 무엇이든 배워 놓으면 다 쓸모가 있다는 것이 내가 가진 신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8장을 통틀어 '블랙홀'이라는 주제가 등장하지 않는 때가 한 번도 없었다. '블랙홀'에 관련된 것들을 총 망라해놓았다고 보면 된다. '블랙홀'에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책 속에서 줄곧 최대한 쉽게 자신의 관심사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책은 금방 끝이 난다. <블랙홀 강의>는 강의하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어, 혹시 천체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학교 때 교양 수업을 듣던 기분을 떠올리며 읽어보면 좋겠다.

참고문헌을 제외하고 362p에 달하는 이 책에는 블랙홀의 역사와 기원뿐만이 아니라, 별과 은하에 대한 설명도 자연스레 덧붙여져 있다. 전공하는 학생들 이외에 대중에게도 블랙홀을 알려온 우종학 교수는 블랙홀과 관련해 자주 듣는 질문들을 책에 싣기도 했다. 마지막 장인 8장에서는 우주를 탐구하는 망원경과 관측시설들에 대한 소개도 이어진다.

과학을 연구하며 "새로운 지식을 성취한 기쁨을 누리는 바로 그 순간, 더 큰 미지의 영역이 홀연히 눈앞에 나타나며", "새로운 지적 지평선이 선명히 드러(41p)"난다고 한다. '과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 일 자체가 고되지만, '천체물리학'은 특히나 실험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학문이라고 한다. 광할한 우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블랙홀은 빛늘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관측을 통한 검증이 쉽지 않(105p)"기 때문에,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블랙홀을 연구주제로 삼고 있는 저자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무한한 영감의 세계인 우주에서 그 무엇보다도 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지성의 한계까지 우리를 내모는 대상(30p)"인 블랙홀은 "너무나 기괴한 존재"였기에 "수백 년 동안 과학자들에게 거부당하고 외면받"기도 했다. 다행히도 21세기의 과학자들은 그것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고, 첨단 시설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 <블랙홀 강의>에서 우종학 교수가 들려주는 블랙홀 연구의 역사를 들었기에 더욱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수없이 부정당하던 블랙홀은 여러 훌륭한 과학자들의 손을 거쳐, 현재에는 일반적인 상식으로까지 이어졌다.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존재들을 발견해내는 과학자들의 상상력과 그것을 입증해 보이려는 그들의 끈기와 노력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버티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과학자들은 '괴짜'라고 불리며, 얼마나 많은 무시를 당해야 했을까?

저자가 블랙홀에 관해 책 안에 탈탈 털어놓은 지식도 정말 유익했지만, 나는 프롤로그에서 보았던 글이 기억에 남는다.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질문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자신이 과학자가 된 것도 어린 시절 번개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때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답을 해준 선생님 덕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어릴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또한 과학이든 어느 것에 관한 질문이든 "그게 밥 먹여주니"라는 대꾸는 흔하게 들어왔던 듯 하다. 블랙홀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신비를 우리가 알아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경제논리만 따지지 않고, 어린아이들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 혹은 과학자들이 세상에 내놓는 이론이나 사실들에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블랙홀을 그저 검은 큰 구멍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퀘이사', '사건지평선', '제트'등 따위를 알려준 우종학 교수님께 감사를 전한다. 이 지식이 밥을 먹여줄 일은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책 <블랙홀 강의>는 지구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우주를 보게 해주었으며, 온갖 과학 괴담에 시달리지 않고 세상을 직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와 만나기 전까지 그에게 나는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눈을 마주하고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의 우주에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블랙홀도 여러분의 우주에 아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동안 쌓아 온 자료를 깡그리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길이 막힐 때마다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창의성은 노력에 비례해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과학사에 빛나는 위대한 업적들은 그렇게 긴 산고를 거쳤습니다. - P41

과학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과학지식이 아니라 그 과학지식을 가능하게 한 위대한 과학자들의 상상력입니다. - P71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긴 장마 기간에도 태양은 매일 떠오르지요. 단지 구름에 가려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 P72

여러분 몸을 구성하는 탄소나 산소 원자 하나하나가 모두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인간들은 별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고 보호하고 보존한다면 아마도 인류는 별에게 진 빚을 충분히 갚는 셈이 될 겁니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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