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조차 호기롭게 소개하기 힘들다. 노자 해석자로 김형효 선생을 추천하고 싶지만, 읽지 않은 책 중에 더 나은 해설서가 있을 가능성과 내게는 감탄을 안겼으나 소개 받을 이에겐 적절하지 않을 가능성이 나를 붙잡았다. 읽지 못한 세계의 방대함, 개인마다 새겨진 천차만별의 고유함! 방대함과 고유함의 세계에서, 긴장 없이 주눅도 없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즐기며 매진하고 싶다. 


당찬 포부가 마음을 감싼다. 종교 의식이라도 치르듯, 고요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두 의식을 매만진다. 나 자신의 안목부터 높여야 한다는 자각과 감산 선생의 풀이까지는 공부하자는 열망’이 그것이다. 자각과 열망은 내 영혼의 오랜 동반자여서인지, 이런 순간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 때로는 명랑함도 깃든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의식이든, 동행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의 건강과 신체 에너지를 더욱 가꿔가야지.

준하고 성실히 읽어가기 위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 꼭지 일기>

 

1.

마음이 찢어질 듯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서성였다. 두어 번은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기타를 집어 들었다. 믿고 있는 신은 없지만, 고통이 커지면 기도하게 된다. 도와 달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영혼으로, 한두 곡의 노래를 불렀다. 하늘은 푸르른데, 눈물이 흘렀다. 노랠 지르면서 기타를 쳤는지 가슴을 쳤는지 모르겠다.

 

2.

믿고 좋아했던 이가 실망스러운 일을 범했다. 미안하다며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도 또다시 비슷한 일을 행하고 말았다. 만감이 교차한다. 욕심에 곧잘 눈이 머는 그이를 감안하면 이해되는 불찰이지만, 내게 지속적인 괴로움을 안길 문제라 용서하기도 힘들다. 웬만한 일은 마음속에서 곧잘 용해되는데, 이번 일은 며칠째 괴로워하는 중이다.

 

3.

차차야, 차차야! 잘 있냐?” 테라스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차차를 부른다. 텅 빈 거실에 짧은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다시, 외친다. “차차야!” 어느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보고 싶은 차차, 다신 못 만날 차차. 이리 생각하면서도 혹시 모를 재회를 기대하며 또 외친다. “차차야, 꼭 다시 만나자. 형아, 곧 갈 테니 거기서 만나. 차차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대체 이 소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청설모가 네 다리의 발톱으로 담벼락을 걸어 다니는 소리를 듣고 보았지만 문장으로 옮길 재간이 없다. 사각사각, 뿌지직뿌지직, 이 둘을 합한 어떤 표현이 있으려나?

 

이른 아침, 창밖에 청설모가 찾아왔다. 어제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사각 뿌지직 소리가 들려 얼른 진원지로 추측되는 창으로 향했다. 녀석은 수직 절벽이나 다름없는 담벼락을 종횡무진 했다. 발자국 소리는 조용하진 않지만 요란스럽지도 않았다.

잠깐의 관찰에도 어떠한 균형이 느껴졌다. 거침없어 보이는데도 안전에 필요한 조심스러움은 갖춘 모습이랄까.

 

창을 사이에 두고 사뭇 다른 두 존재의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시간이었다. 청설모는 이내 방향을 돌려 저만치 벽으로 달리듯이 걸어갔다. 곧이어 폴짝 뛰어올랐다. 담벼락에서 나뭇가지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비행하듯 이동했다. 겨울의 나뭇가지는 앙상했다. 비틀어진 고엽 몇 잎이 안쓰럽게 매달려 있었다.

녀석은 알까. 한겨울 추위를 무탈하게 나길 바랐던 내 마음을. 아마도 기우일 테지. 자연의 섭리가 있으니.

 

청설모의 취향을 몰라 나름의 예상으로 견과류를 창가에 놓아두었다. 새들도 곧잘 집어 먹는 반려견 사료도 나란히 놓았다. 청설모와 다람쥐는 식성이 같을까, 녀석들의 먹이는 어디에서 팔까 하는 유의 호기심도 창가에 함께 두었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녀석이 산속으로 들어갔듯이.

 

창문을 열면 들어오려나? 행여 순식간에 잠입이라도 한다면 난리 나겠지? 오늘도 상상 만으로 그쳤지만 머릿속엔 주방과 거실로 휙휙 날아다니는 모습이 그려졌다. 큰일이야 나겠어, 하고 생각하면서도 정리정돈에 대한 번거로움을 걱정한다.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한 기대감이 속삭였다. 언제 다시 올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새해가 하얗게 시작되었다. 해가 바뀐 첫날 아침 눈이 내렸다. 이웃집 개들을 위해 테라스에 놓아둔 사료를 새 몇 마리가 날아와 재잘거리며 집어갔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눈 위에서 첫 끼니를 마친 새들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중에선 잔눈발이 하늘하늘 내려왔다. 곳곳이 하얀 세상이었다. 눈 내린 테라스, 마을에 난 찻길, 가가호호 지붕.

 

겨울나무는 가지마다 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낭만적인 풍광이었다. 새들이 하얀색 도화지에 발자국 그림을 찍어놓았다. 이 앙증맞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새해를 맞았다. 내 삶에도 낭만적인 기쁨이 잦기를 소망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