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베이비
클레르 카스티용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클레르 카스티용의 『왜 날 사랑하지 않아』를 읽은 후 이 책을 바로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도 사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몰라서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다른 책도 읽어보자 싶어 읽기 시작했는데 기리노 나쓰오의 괴기하고 불편한 이야기나 백가흠의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인생들을 읽었음에도, 또 클레르 카스티용의 자폐적인 장편을 금방 읽어냈음에도 이 책의 첫 단편부터 허걱! 해버렸다. 정말 쎄다.- -;;

이 책을 건네 준 친구는 자기로선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너는 남자니까 엄마와 딸의 그 미묘한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 그렇다면 나는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몰라. 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하고 큰소리치며 받은 책이었는데….

19편의 단편이 들어 있는 『로즈 베이비』는 엄마와 딸, 딸과 엄마의 이야기다. 이 책에서 남편과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다. 이혼을 했거나 출장 중이며, 있다 하더라도 엄마와 딸의 존재에 가려 있다. 모든 상황이 오롯이 엄마와 딸, 둘이서 이루어지며 그 둘의 미묘한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그 미묘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내용들이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단편들뿐이었고, 클레르 카스티용의 정신 상태를 감정해보고 싶은 마음까지 갖게 했다.

대부분의 단편들이 그 잔혹함과 엽기적인 부분으로 인해 엄청나게 불쾌하고 짜증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은 이유를 묻는다면 단지 그 중에서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아니면 내 정신 상태도 클레르 카스티용과 별반 다를 게 없었든지;;; 

아무튼 클레르 카스티용의 문체는 한마디로 잔혹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성性과 관련된 어이없는(우리 정서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제외한다면 그 과격한 글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이 보인다. 그러니 겉모습만 보고 이 책을 던져버리면 후회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르게 생각해보았다. 잔혹하고 불편한 문체이지만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 불편함만 조금 없애면 다 이해가 되지 않을까? 소설이잖아, 소설이니까 이렇게 표현했을 거야. 정말 이런 딸이, 이런 엄마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나니 이해가 됐다. 어쩜 좋아!! 이해가 되다니…- -;;;

"나는 비명을 지른다. 엄마가 없으면 누가 나한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말해주지? 그것도 이런 식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p34

특히, 아픈 엄마에게 몹쓸 소리를 해대는 딸이 나오는 「파카와 어그부츠」를 읽을 땐 딸의 마음이 절절하게 이해가 되었다. 세상의 이치는 모두 엄마에게서 배웠는데 그 엄마가 아파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딸에게 기대고, 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을 바라봐야 하는 딸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심은 그게 아닌데도 자꾸만 못된 소리나 짜증내는 소리만 해대는 딸! 그 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 「결별」의 엄마처럼 뭐든지 잘 통하던 엄마가 언제부터인가 "확 오그라들어서는 소인국의 난장이가 돼 버려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 드리운 시커먼 그늘 속에 파묻혀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할 때 딸이 갖게 되는 두려움은 딸이 자라고 엄마가 늙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딸은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척 독설을 내뱉는다. 엄마 없이도 다 잘해내며 살 수 있을 거라고 큰소리치지만 정작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다. 그게 딸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어떤가? 마냥 아이일 줄만 알았던 딸이 어느 날 스스로 자란 것처럼 엄마를 귀찮아한다. 그때 느낄 엄마의 상실감은 딸이 엄마가 된 후에 자기와 똑 닮은 딸을 나아봐야지만 깨닫게 되는 문제일 것이다. 그뿐이다. 클레르 카스티용은 잔혹한 말들을 써가며 독자들을 불편할 대로 불편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정작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책은 독자에게 불편만 주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그러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몇 편의 단편들과 정신병자라고밖에 생각이 안 드는 몇 편의 단편들, 잔혹하고 불편한 또 몇 편의 단편들을 제외한다면 읽을 만하다. 내 마음을 울리는 문장도 있다. 딸로서 엄마에 대한 많은 생각도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선뜻 권할 수는 없다. 욕먹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말만은 해주고 싶다. 깊이 들여다보라고,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라고,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읽어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