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순례자 시튼 (반양장) - 동물기의 작가 시튼이 쓴 자서전, 보급판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작은우주 옮김 / 달팽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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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순례자, 시튼>은 <시튼 동물기>로 잘 알려진 시튼의 자서전이다. 대부분의 자서전이 그렇듯 어렸을 때부터 자서전을 쓸 때까지의 여러 일화들과 그 일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작가의 생각, 또는 성장의 과정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시튼의 경우 어떠한 인생 역전의 모습보다는 꾸준한 자연에 대한 관심을 본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어서 다소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다만 시튼이 미국의 유명한 박물학자이자 화가, 그리고 소설가임에도 어린이나 읽는 동물기의 저자로밖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본 자서전은 신선하게 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에 대한 감상은 뭐랄까.. 나 역시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는 정도랄까? 사실 시튼의 상황처럼 푸른 숲 속을 개간하고 또한 서부 개척을 하던 시대에 살지 않아 다소 내게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도시화가 안 된 자연에서의 삶에 대해 그리고 동물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되었던 것에 느낌이 통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동물기의 작가답게 글 자체가 재미있어 쉽게 읽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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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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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를 읽고 있다. 진중권이라는 작가의 섬세한 감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인문학의 책이 주는 그런 중압감은 사라지고 흥미로운 이야기와 구성이 상쾌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가볍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난 소위 말하는 쉬운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쉬운 책이라는 단 한 단어로 모든 것을 포함하기는 어렵겠지만 쉽다고 하는 책은 워낙 가벼워 조그마한 바람에도 한없이 덧없이 휩쓸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쉽지 않으면 읽히기가 힘들다. 그게 아마 책이 갖고 있는 오래된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어려운 것은 악이 되는 이 시대에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써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과연 요즘 책들은 어떻게 반영하는가?

대부분의 책은 대중성을 택한다. 흔히 말해 과격한 글이나 어설픈 민족주의로 우리의 감성을 흔들고 때로는 이성보다 광기에 가까운 글들이 난무한다. 쉽지만 난 거기서 예전 독일의 나치즘과 같은 안타까움을 본다. 또 다른 책은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다. 그런 책은 한결 고귀해 보이지만 살아 숨쉬지 않는 박제화된 지식이자 책이다. 그것도 타인이 만든 게 아닌 자신이 직접 그 박제화를 만드는 장본인이다. 이런 시대에 그래서 사람들은 출판계의 위기를 말하고 또한 걱정한다.

그러나 이런 흐름 가운데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책들이 종종 있으니 그런 책중 하나가 <미학 오디세이>가 아닐까 한다. 철저하게 독자를 배려하는 구성과 문체.. 그러나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으려는 작가의 고귀한 정신이 어울려 인문학 출판물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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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고발한다
이상호 지음 / 문예당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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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른 사람의 진심을 알고 싶을 때 그 사람의 글을 읽는다. 물론 그것은 쉽지가 않다. 우선 그 사람이 쓴 글을 읽기가 힘들 경우가 많다. 혹 그 사람이 쓴 글을 찾았다 할 지라도 그 글이 단편적인 글이어서 그 사람의 진심을 모두 유추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내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음으로써 그 사람의 진심을 알고자 할 때는 그 사람이 공인이거나 작가이거나 교수일 때가 대부분이다. 어쨌든 글을 통해 한 사람의 진심을 알고자 하는 이유는 글만큼 한 사람을 정확히 투영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글은 그 글을 쓴 당사자가 인식하지 못한 진심마저도 드러낸다고 믿는다.

몇 달 전 한 기자의 뇌물수수 문제가 나에게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그 전까지 그 기자는 분명 진실을 추구하고 누구보다도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자신이 밝힌 비리의 주체자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보도는 날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다. 곧 나는 그 사건의 과정이 어떤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후에 그는 뇌물수수 문제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고 그 내용은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뇌물을 돌려줬다는 것이었다. 물론 잠시 동안이지만 그가 항상 주장했던 청렴, 정의, 진실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비난받아야 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쉽게 그를 비난만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바로 그는 내부고발자였기 때문이다. 비난받고 후에 자신의 미래까지도 보장 못할 사건을 그는 고백했다. 그래서 난 그를 비난만 할 수 없었다. 비난과 함께 쉽지 않은 고백을 한 그의 용기도 함께 했다.

그 후 난 그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라는 그의 수필집이었다.

사실 난 슬픈 영화나 소설 혹은 병원다큐 같은 프로 등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마음속 한구석에 그런 슬프다는 감정을 일으키는 작위적 공식이 그런 매체에 숨어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광주민주화 운동, 87년 민주화 운동 같은 다큐를 보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다. 난 이 수필을 읽으면서 그런 비슷한 눈물을 흘렸다. 잘 흘러가는 듯한 현 사회에 흐르는 비리와 부조리를 캐내고자 하는 기자의 노력을 난 보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정의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라고 한다. 그러나 사랑과 용서는 정의의 상위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 또한 사랑과 용서의 방법일 수 있다. 오히려 정의 구현을 위한 사람보고 사랑과 용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자신의 비리와 부패를 감추기 위한 좋은 변명일 경우가 이 사회에는 더 많다. 자기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까지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기자의 노력이야말로 이 사회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또 용서 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난 느낄 수 있었다.

난 이 수필을 읽으며 나에 대한 반성도 해봤다. 말로는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내 한 몸 희생하고 싶다고 했으나 실천은 뒷전이었다. 그 이면에는 편한 길을 찾고 싶었고 또한 현실이라는 변명거리를 들추어냈다. 조그만 부조리일 뿐이라며 나의 잘못을 덮고자 했고 그것을 들춰내려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이 드러냈던 것이 바로 내 삶이었음을 깨달았다.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치열한 시장경제체재하에 살아가는 생존의 법칙이 아니다. 이 땅에 태어난 자연인으로서 당연히 부여된 의무일 뿐이다. 그러나 그 바뀜은 항상 정당해야한다. 그리고 올바라야 한다. 올바름이란 지금 이 시점에서 바로 확인하거나 또 그 올바름의 대상이 나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장기적인 시야로 보아야 하며 또 그 대상은 나를 넘어 우리라는 커다란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이상호 기자. 지금 그를 방송에서 보기 힘들다. 아무래도 사회적 파장이 컸던 만큼 그의 활동영역은 생각보다 많이 좁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를 믿는다. 그의 글에서 난 그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다만 그 잘못을 반성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다. 또 잘못을 저지른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자신이 고발한 기업에 뇌물을 받은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그 뇌물에 있지 않았다. 단지 실수였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무한히 반성하고 그 결과로 기자라는 자신의 미래에 크게 장애가 될 뇌물수수 관련 글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래서 난 더욱 더 그가 앞으로 더 많은 활약을 하리라 믿는다. 아직도 그는 이 사회가 건전함을 보여줬다. 난 그를 진심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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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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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평론에 관련된 이야기의 특징은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란 그 시대성과 함께하므로 그 시대가 지난 후에 사회에 대한 평은 의미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우리나라 국민성을 가지고 지난 일에 쉽게 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은 시간이 지난 후 잊는 것이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다만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지금의 어떤 의사결정에 있어 의미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기억되고 의미화할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70년대 초반 우리나라 사회와 국제정세에 대한 한 기자의 분석논문이다. 따라서 그 글에서 나타나는 여러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은 지금 나에게 있어 의미없거나 고리타분한 것도 많다. 그것은 어쩌면 과잉지식시대에 있어 공해와도 같은 것이다. 의미없다고 생각되고 재미없는 사건에 대해 초점을 맞춘 글을 글의 내용 전개를 이해하기 위하여 읽어야함은 당연히 짜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음에 있어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초점의 대상과 사고의 방식이 당시 사회적 상황에 비추어보아 획기적이다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참신함과 용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평가나 미국, 중국, 일본에 대한 평가는 당시 획일적이고 흑백논리적이였던 지식인의 시대적 상황을 비추어 볼 때 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그 내용의 파격성을 떠나 그 주장을 함에 있어 논리적이며 상황을 정확히 꽤뚫는 관찰력은 참으로 부럽고도 존경스런 저자의 능력이다.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초점을 맞춘 사건과 소재들은 오래된 과거의 일들이며 따라서 현재 우리의 상황과 과히 큰 개연성이 없는 글이라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책의 제목과 같이 그의 주장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라는 것이다. 그 책이 같고 있는 당시로써의 파격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그 파격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방법적인 틀, 즉 논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제정세라는 것을 표면에 흐르는 상황이 아닌 그 밑에 있는 안 보이는 그림자까지 관찰하며 또한 그 관찰의 내용을 근거로 한 주장 역시 억측이나 가정 혹은 황당한 소설처럼 상상력에 기인한 것이 아닌 객관적인 자료와 함께 합리적인 분석을 통한 방법론적인 접근. 바로 이것이 제목에서 제시한 전환시대의 논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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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아이들 서문문고 124
장 콕토 지음 / 서문당 / 198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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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 꼭또의 소설 무서운 아이들. 마치 공포영화 제목 같다. 개인적으로 사춘기 시절을 난 별탈 없이 지나갔다. 한참이 지난 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사춘기 시절 별탈 없이 지나간 것이 나에겐 큰 불행이었던 것 같다. 다 커서 더 이상 사춘기 시절의 어리광이라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야 그 홍역을 치러야 했으니 남들이 봤을 땐 얼마나 꼴불견이었으며 나 자신에겐 얼마나 큰 불행이었던가.

하지만 그 사춘기를 유난히 힘들게 보내는 이들도 있나 보다. 쟝 꼭또의 <무서운 아이들>이 그렇다. 불안정한 가정환경에 사는 아이들의 사랑과 질투, 우정, 음모를 신비로운 분위기로 그려냈다. 마치 꿈에서 나비가 돼었다가 깨어나니 사람인데 그 꿈이 너무도 선명하여 나비가 현실인지 사람이 현실인지 헷갈려 하는 고사처럼 현실과 비현실을 왔다갔다하면서 그리는 묘사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사춘기 소년 소녀의 혼란스런 정체성을 섬세히 그려냈다는 것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소년 시절의 혼란스런 정신세계를 묘사하는 소설들이 그러하듯이 무어라 표현하긴 힘들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소설의 분량이 적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요리에 소금간 이 부족할 때 느끼는 것과 같다. 재미있고 또 무척이나 잘 쓰여진 소설이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 그것은 그런 류의 소설이 주는 장르 자체의 한계일까? 아니면 나의 선호도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운이 나쁘게 내가 그런 류의 책만 읽게 된 것일까? 하긴 완벽히 딱 내 입맛에 맞는 소설은 거의 없으니 변덕스러운 나의 입맛을 우선 탓해야 할 게다. 그러나 간혹 나의 입맛에 딱 맞는 그런 소설을 읽었을 때의 그 쾌감과 또 감동을 잊지 않고 있기에 약물중독마냥 소설중독에 빠진 난 입맛 맞는 소설을 찾아 오늘도 도서관을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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