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고발한다
이상호 지음 / 문예당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난 다른 사람의 진심을 알고 싶을 때 그 사람의 글을 읽는다. 물론 그것은 쉽지가 않다. 우선 그 사람이 쓴 글을 읽기가 힘들 경우가 많다. 혹 그 사람이 쓴 글을 찾았다 할 지라도 그 글이 단편적인 글이어서 그 사람의 진심을 모두 유추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내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음으로써 그 사람의 진심을 알고자 할 때는 그 사람이 공인이거나 작가이거나 교수일 때가 대부분이다. 어쨌든 글을 통해 한 사람의 진심을 알고자 하는 이유는 글만큼 한 사람을 정확히 투영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글은 그 글을 쓴 당사자가 인식하지 못한 진심마저도 드러낸다고 믿는다.

몇 달 전 한 기자의 뇌물수수 문제가 나에게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그 전까지 그 기자는 분명 진실을 추구하고 누구보다도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자신이 밝힌 비리의 주체자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보도는 날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다. 곧 나는 그 사건의 과정이 어떤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후에 그는 뇌물수수 문제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고 그 내용은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뇌물을 돌려줬다는 것이었다. 물론 잠시 동안이지만 그가 항상 주장했던 청렴, 정의, 진실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비난받아야 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쉽게 그를 비난만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바로 그는 내부고발자였기 때문이다. 비난받고 후에 자신의 미래까지도 보장 못할 사건을 그는 고백했다. 그래서 난 그를 비난만 할 수 없었다. 비난과 함께 쉽지 않은 고백을 한 그의 용기도 함께 했다.

그 후 난 그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라는 그의 수필집이었다.

사실 난 슬픈 영화나 소설 혹은 병원다큐 같은 프로 등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마음속 한구석에 그런 슬프다는 감정을 일으키는 작위적 공식이 그런 매체에 숨어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광주민주화 운동, 87년 민주화 운동 같은 다큐를 보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다. 난 이 수필을 읽으면서 그런 비슷한 눈물을 흘렸다. 잘 흘러가는 듯한 현 사회에 흐르는 비리와 부조리를 캐내고자 하는 기자의 노력을 난 보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정의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라고 한다. 그러나 사랑과 용서는 정의의 상위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 또한 사랑과 용서의 방법일 수 있다. 오히려 정의 구현을 위한 사람보고 사랑과 용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자신의 비리와 부패를 감추기 위한 좋은 변명일 경우가 이 사회에는 더 많다. 자기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까지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기자의 노력이야말로 이 사회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또 용서 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난 느낄 수 있었다.

난 이 수필을 읽으며 나에 대한 반성도 해봤다. 말로는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내 한 몸 희생하고 싶다고 했으나 실천은 뒷전이었다. 그 이면에는 편한 길을 찾고 싶었고 또한 현실이라는 변명거리를 들추어냈다. 조그만 부조리일 뿐이라며 나의 잘못을 덮고자 했고 그것을 들춰내려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이 드러냈던 것이 바로 내 삶이었음을 깨달았다.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치열한 시장경제체재하에 살아가는 생존의 법칙이 아니다. 이 땅에 태어난 자연인으로서 당연히 부여된 의무일 뿐이다. 그러나 그 바뀜은 항상 정당해야한다. 그리고 올바라야 한다. 올바름이란 지금 이 시점에서 바로 확인하거나 또 그 올바름의 대상이 나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장기적인 시야로 보아야 하며 또 그 대상은 나를 넘어 우리라는 커다란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이상호 기자. 지금 그를 방송에서 보기 힘들다. 아무래도 사회적 파장이 컸던 만큼 그의 활동영역은 생각보다 많이 좁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를 믿는다. 그의 글에서 난 그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다만 그 잘못을 반성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다. 또 잘못을 저지른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자신이 고발한 기업에 뇌물을 받은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그 뇌물에 있지 않았다. 단지 실수였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무한히 반성하고 그 결과로 기자라는 자신의 미래에 크게 장애가 될 뇌물수수 관련 글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래서 난 더욱 더 그가 앞으로 더 많은 활약을 하리라 믿는다. 아직도 그는 이 사회가 건전함을 보여줬다. 난 그를 진심으로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