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부는 이 책을 SF 소설이나 환타지 소설로 분류하는 것으로 안다. 내가 이런 장르에 관심이 있는 것도 또 지식을 갖고 있던 것도 아니기에 뭐라 할 처지는 아니겠지만 이런 장르 분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내가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다.

왜냐하면 장르란 소설의 소재나 분위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장르란 좀 더 본질적인 그 무엇의 기준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나 <어린왕자>는 분명 쉽게 쓰여졌고 주인공과 이야기의 소재가 어린이지만 그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어른으로 향해 있다. 따라서 이런 소설을 동화라 하지는 않는다. 설사 동화로 구분한다치더라도 분명히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설명이 곁들여지기 마련이다.

<갈라파고스>는 분명 이 책의 표지에서 선전하듯 생태학의 진화론과 자연선택 이론을 기반으로 쓰여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를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 이 이야기의 초점은 현재 우리 인류에 대한 반성과 비평이다. 그래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런 이론을 도입했고 이야기의 전달자를 100만 년이나 이 지구를 떠돈 유령으로 설정했을 뿐이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을 SF 소설이나 환타지 소설이 아니라 문명 비판 소설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fmm 2006-07-2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F로 분류되면 문명비판소설이 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자고로 SF의 여명기부터 헉슬리, 쟈마찐, 베르느, 웰즈 등이 보여주었듯이 과학소설은 문명비판소설과 한몸이었습니다. 설사 30년대 이후 번창한 미국의 펄프SF소설조차 거죽으로는 문명비판을 포장하고 있었죠. SF의 본질과 추구하는 바를 이해하신다면 문명비판을 별도의 잣대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입니다.

RAJAH 2006-07-2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르 구분은 구분의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명비판소설이라는 장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장르라고 한 이유는 소설의 분류 기준을 소설의 주제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느냐로 구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물론 SF의 소설이 문명비판적이다란 말에는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SF의 약자부터 과학소설이듯 SF의 구분의 기준은 소재에서 찾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소설의 대다수 특징들이 문명비판적일 뿐 문명비판이라는 기준이 SF로 분류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까마귀의 생물학적 분류는 색깔이 까만 것에서 찾지 않습니다. 까마귀가 까만 것은 사실이지만 까만 것이 까마귀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지는 못합니다.

저는 갈라파고스가 과학을 소재로 하는 것도 사실이고 SF에 분류하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갈라파고스의 소재가 과학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본질적인 것은 그 주제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한 소재에 이야기가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기서는 소재가 하나의 주제로 향하는 부수적인 요소밖에 안 된다고 감상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어차피 장르의 분류는 진정 소설을 감상하는 것에 무의미할 수는 있습니다. 따라서 문명비판소설이냐 SF냐 라고 감상평을 작성한 것은 그냥 소설을 읽고 단순한 저의 감상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코멘트를 남기는 것은 좋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또 한 번 생각하게 한 코멘트에 감사합니다. 단, 코멘트를 남길 때에 있어 매너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심코 쓰신 것일 수도 있지만 '짓'이라는 표현은 좋지 않은 행동이나 행위 등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 아닌가요?

 단순한 감상평을 쓴 행동이나 행위에 '짓'이라는 표현을 한 것이야말로 매너없는 '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