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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disc) - 할인행사
월터 살레스 감독,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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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체의 이야기에는 충분히 젊은이에게 감동을 주는 어떤 것이 있다. 그건 아마도 청년다운 신념과 그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의지 때문일 것이다. 

이상과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도 탈락을 하고 타락하는가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다소 상관없는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 친구가 나에게 역시 락을 하는 사람은 일찍 죽어야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서 얼마간은 나태해지고 또는 여러 유혹에 둔감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정신과 도전정신 그리고 이상을 향한 의지는 무뎌질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그렇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는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영화 자체가 그렇게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정상인과 나병 환자를 가로질러 나병 환자에게 수영해 건너가는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특별히 잘 만들어졌다기보다 라틴아메리카의 자연풍광과 민족성, 정치, 역사적 환경, 그리고 체에 대한 것을 느끼고 싶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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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2disc, dts) - 아웃케이스 없음
장이모 감독, 양조위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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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인 뜻이야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흔히 영웅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을 칭한다. 실존 여부와 상관없이 대표적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헤라클레스, 나폴레옹, 시이저 등을 거론하고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처한 한계를 뛰어난 의지로 극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지 한계를 극복했다고 모두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을 유익하게 하고 나아가 인간의 발전에 기여을 한 사람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문제는 인간의 발전이라는 것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난 어린이용 위인전에 나폴레옹이나 처칠 같은 정치가와 군인들이 영웅편에 편집되어 있는 것에 대단한 불만을 갖고 있다. 자칫 잘못된 신념과 세계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독재자로 평가받던 사람을 영웅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 바로 영웅이라는 영화가 그런 사례가 될 것이다. 흔히들 진시황을 지독한 독재자로 표현한다. 하지만 영화는 진시황을 암살하러 온 주인공이 진시황에게 암살과정을 이야기하는데 두 번의 거짓말과 한 번의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 진시황의 고민을 관객으로 하여금 함께 고민하게 만들고 그가 진정한 영웅인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함께 던진다.

사실 민주정치와 권력분립이라는 정치 패러다임에 익숙한 우리에게 진시황은 무자비하고 지독한 독재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오래 전 당시 중국의 문화와 정치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우리가 알고 있는 신념으로 그를 평가해 독재자라 한다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런 면에서 영웅이라는 영화는 당시 진시황에게 가족이 희생당해 고통스러워하고 복수를 꿈꾸는 암살자의 입장을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혼란스러운 당시 정국을 통일해 보다 많은 사람을 풍족하게 만들고 싶어 했던 진시황의 고민을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진시황의 개인적 잔인성이나 권력 집착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서 어쩔 수 없이 악역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진시황을 영웅이라고 이야기하며 또한 중국의 권력을 쟁탈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 역시 영웅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역사는 단순히 기록을 남길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 기록 속에서 영웅을 만들고 독재자를 만든다. 따라서 영웅은 역사의 산물이 아닌 우리의 머리와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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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 [할인행사]
앤드류 니콜 감독, 우마 서먼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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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타카라는 영화를 봤다.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였다. 오래 전 영화라 내용이 주는 참신함을 백프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쫓고 쫓기는 스릴러식 전개와 운명을 개척하는 드라마적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듯하다. 다만 다소 진지하고 깊은 생각을 해야 할 주제를 놓고 가볍게 터치하듯 혹은 무책임하게 문제점만 툭 던진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내게 있어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주인공이 남긴 단 하나의 대사 때문이다.

"넌 알고 싶겠지.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영화는 가까운 미래에 유전자 조작을 통한 자녀 출산이 빈번한 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빈센트처럼 자연적인 출산을 한 사람은 유전적으로 열성이기 때문에 하층부에 또 빈센트의 동생처럼 유전조작을 통해 출산한 사람은 뛰어난 유전 형질로 인해 상류층으로 신분이 구분된 사회다. 실제로 유전적으로 열성인 빈센트는 어릴 때부터 많이 앓았고 동생과의 바다 수영 시합에서 항상 지곤 한다.

그럼에도 빈센트는 자신의 유전 형질로는 될 수 없는 우주비행사의 꿈을 꾼다. 결국 빈센트는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유전자 신분을 사게 되고 자신의 노력을 더해 우주 비행사의 꿈을 이루려는 찰나 형사가 된 동생에게 신분이 들통난다.

그때 동생과 빈센트는 바다 수영을 한다. 바다 수영은 바다를 향해 수영을 하는데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육지와 한참 멀어져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동생이 게임을 포기한다.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동생이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빈센트에게 진 것이다.

 그때 던진 빈센트의 말이 바로 "넌 알고 싶겠지.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다.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것은 곧 운명을 넘는 것이고 또한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승리이다. 난 내가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고 질주한 적이 있던가?

이카루스가 어리석다고 말한 사람은 더 어리석다. 비록 그는 떨어졌지만 결국 그보다 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있던가?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비록 바닷물에 빠져 죽더라도 내 날개의 밀랍이 녹아 추락하더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내 운명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아니 뛰어넘을 가능성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투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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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CE - 화보집 + 엽서 포함 디지팩 양장케이스
올리버 스톤 감독, 콜린 파렐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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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를 봤다. 무려 세 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이 고문의 시간과도 같았다. 플레툰과 JFK 그리고 도어즈를 만든 올리버 스톤의 작품이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예술적 상상력은 사라지고 알렉산더의 일대기를 주절거리는 내용에 세 시간이나 투자할 수 있었다는 것이 대단한 용기로 보인다.

반복적인 감상적 대사, 즉 운명은 용기있는 자를 선택한다란 말 속에 감독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 되묻고 싶다.

추측컨대 감독은 영웅으로서의 알렉산더가 아닌 영웅이 되려고 했던 알렉산더의 개인적 고뇌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슬픔을 전하고 싶어한 듯하지만 도대체 그런 작업이 왜 필요한가? 또한 큰 꿈을 가진 자와 그 꿈을 실현하는 장애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 얻을 감동을 전하고자 한 듯 싶지만 그건 여지없이 실패한 듯 싶다.

우선 알렉산더의 개인사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고독과 외로움은 지나친 감상주의다. 또한 알렉산더의 커다란 짐으로 묘사되는 모친의 행동과 그로 인한 알렉산더의 심리적 갈등은 세밀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이질적이다. 모친의 정신병적 행동의 원인으로 알렉산더의 부친인 필립과의 갈등을 단편적으로 소개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친의 정신병적 행동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더군다나 필립의 사망 후에도 계속되는 모친의 행동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알렉산더의 해외 원정 이유를 잠시 어머니로부터의 도피로 설명한 장면들이 보이니 이 또한 우습다. 계속된 알렉산더의 해외원정 이유를 알렉산더의 모험심 내지는 도전 정신으로 설명하다 요즘 말로 쌩뚱맞게 어머니로부터의 도피로 설명하는 것은 가당찮다.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미지 세계의 정복자로서의 고귀한 행동으로 묘사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감이 없지 않으나 세계를 하나의 시민으로 만들려는 알렉산더의 의지는 마치 요즘 말하는 세계화를 의미하는 듯 하여 마치 서구 신자유주의자들의 세계화 이념을 전파하려는 내용과 같아 안타깝다. 이는 나의 호들갑스런 판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화와 같은 문화 매체야말로 실상은 이념의 전파에 있어 최첨병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문화 매체를 통해 자기 이념을 각국에 이식시킨 과거 역사가 증명한다. 소영웅주의적 가치를 나타낸 록키나 세계의 중심으로의 미국을 나타낸 인디펜던스 데이, 그리고 애국적 정신을 강조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대표적 예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알렉산더의 내용 역시 감독이 의도를 했든 안했든 그 속에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지배하고 있고 또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실패 이유 두 번째인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드러냈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알렉산더의 세계정복이 왜 그토록 위대한 가치인지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이외의 세계를 미개한 나라로 설정하고 정복한 곳에 그리스식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마치 은혜를 배푸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그야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중간에 알렉산더의 행동은 문화우월주의를 경멸하는 것처럼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디테일한 것에 불과하며 근복적으로 알렉산더 역시 세계의 중심은 자신의 세계였다.

정리하자면 영화는 알렉산더의 세계정복 사실만 강조하여 세계정복 과정은 사라졌고 다만 세계정복의 이유가 알렉산더의 모친에 대한 도피와 세계정복에 대한 알렉산더 개인의 갈망이었다는 내용뿐이다. 문제는 모친으로부터의 도피였든 개인적 갈망이였든 명분없는 전쟁조차 단지 결과론적으로 대제국을 이룬 사람이면 신화가 되고 또 영웅이 된다는 듯한 태도다. 더구나 그 태도에 대한 방어책으로 원래 영웅은 외롭기 마련이다란 설정 역시 그 내용에 있어 빈약함을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여하튼 2005년 1월 1일 첫날부터 본 영화가 이런 영화였다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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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들
임상수 감독, 백윤식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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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다음 날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란 영화를 봤다. 연휴라는 기간 때문인지 영화의 특성 때문인지 다른 때와 달리 어르신들이 많았다. 또 영화를 보는 내내 산만했다. 영화를 다 본 나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나 역시 박정희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이 못 된다. 어쩌면 적대적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의 경제성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했던 경제성장을 이룩한 점은 분명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발전과는 다른 이야기다. 왜냐하면 경제성장은 단지 국민총생산량이라는 단일 기준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전이라는 것은 단순 생산량뿐 아니라 앞으로의 지속성장가능성 및 자원의 효율적 분배 등과 같은 여러 요소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어쨌든 백번 양보해서 그가 한 경제성장을 발전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치자.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성장이든 발전이든 그 이면에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누나 형의 피와 눈물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성장이 급한 문제라 치더라도 그 성장이 내 형제를 전쟁터에 팔아서 또는 내 누이를 창녀촌에 팔아서 또는 죽여서 이룩한 성장이라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도둑질을 해서 혹은 강도질을 해서 부자가 된 것을 존경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실 이 영화는 나에게 무척이나 재미있는 유머로 다가와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혼란으로 다가온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설마 이 영화의 상영 금지를 주장하는 이들처럼 나 역시 현실과 픽션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 또한 말이 안 되는 것이 판사 영감의 판결로 혼란을 줄 수 있는 부분인 다큐멘터리를 삭제하고 방영한 것이 아닌가?

영화의 혼란은 영화 자체에서 온 것이 아니다. 사실 그 영화는 상영 금지를 주장하는 이들처럼 명예훼손을 하려는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예훼손을 할까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는 줄곳 지루한 톤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만약 한석규와 백윤식이라는 배우가 없었더라면 그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조차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둘러싼 정치권 및 여러 이해 당사자에게 있다. 영화를 보고 혼란할 수 있느니 없느니를 따지는 것은 과연 그 영화를 보고 하는 소리인지 묻고 싶다. 이미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이라면 영화를 본 후에도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겠지만 객관적으로 지켜볼 때 요즘 사회에 그 영화 자체가 이슈가 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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