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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CE - 화보집 + 엽서 포함 디지팩 양장케이스
올리버 스톤 감독, 콜린 파렐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알렉산더를 봤다. 무려 세 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이 고문의 시간과도 같았다. 플레툰과 JFK 그리고 도어즈를 만든 올리버 스톤의 작품이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예술적 상상력은 사라지고 알렉산더의 일대기를 주절거리는 내용에 세 시간이나 투자할 수 있었다는 것이 대단한 용기로 보인다.
반복적인 감상적 대사, 즉 운명은 용기있는 자를 선택한다란 말 속에 감독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 되묻고 싶다.
추측컨대 감독은 영웅으로서의 알렉산더가 아닌 영웅이 되려고 했던 알렉산더의 개인적 고뇌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슬픔을 전하고 싶어한 듯하지만 도대체 그런 작업이 왜 필요한가? 또한 큰 꿈을 가진 자와 그 꿈을 실현하는 장애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 얻을 감동을 전하고자 한 듯 싶지만 그건 여지없이 실패한 듯 싶다.
우선 알렉산더의 개인사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고독과 외로움은 지나친 감상주의다. 또한 알렉산더의 커다란 짐으로 묘사되는 모친의 행동과 그로 인한 알렉산더의 심리적 갈등은 세밀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이질적이다. 모친의 정신병적 행동의 원인으로 알렉산더의 부친인 필립과의 갈등을 단편적으로 소개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친의 정신병적 행동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더군다나 필립의 사망 후에도 계속되는 모친의 행동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알렉산더의 해외 원정 이유를 잠시 어머니로부터의 도피로 설명한 장면들이 보이니 이 또한 우습다. 계속된 알렉산더의 해외원정 이유를 알렉산더의 모험심 내지는 도전 정신으로 설명하다 요즘 말로 쌩뚱맞게 어머니로부터의 도피로 설명하는 것은 가당찮다.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미지 세계의 정복자로서의 고귀한 행동으로 묘사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감이 없지 않으나 세계를 하나의 시민으로 만들려는 알렉산더의 의지는 마치 요즘 말하는 세계화를 의미하는 듯 하여 마치 서구 신자유주의자들의 세계화 이념을 전파하려는 내용과 같아 안타깝다. 이는 나의 호들갑스런 판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화와 같은 문화 매체야말로 실상은 이념의 전파에 있어 최첨병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문화 매체를 통해 자기 이념을 각국에 이식시킨 과거 역사가 증명한다. 소영웅주의적 가치를 나타낸 록키나 세계의 중심으로의 미국을 나타낸 인디펜던스 데이, 그리고 애국적 정신을 강조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대표적 예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알렉산더의 내용 역시 감독이 의도를 했든 안했든 그 속에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지배하고 있고 또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실패 이유 두 번째인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드러냈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알렉산더의 세계정복이 왜 그토록 위대한 가치인지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이외의 세계를 미개한 나라로 설정하고 정복한 곳에 그리스식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마치 은혜를 배푸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그야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중간에 알렉산더의 행동은 문화우월주의를 경멸하는 것처럼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디테일한 것에 불과하며 근복적으로 알렉산더 역시 세계의 중심은 자신의 세계였다.
정리하자면 영화는 알렉산더의 세계정복 사실만 강조하여 세계정복 과정은 사라졌고 다만 세계정복의 이유가 알렉산더의 모친에 대한 도피와 세계정복에 대한 알렉산더 개인의 갈망이었다는 내용뿐이다. 문제는 모친으로부터의 도피였든 개인적 갈망이였든 명분없는 전쟁조차 단지 결과론적으로 대제국을 이룬 사람이면 신화가 되고 또 영웅이 된다는 듯한 태도다. 더구나 그 태도에 대한 방어책으로 원래 영웅은 외롭기 마련이다란 설정 역시 그 내용에 있어 빈약함을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여하튼 2005년 1월 1일 첫날부터 본 영화가 이런 영화였다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이다.